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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봉원사 괘불도

지정명칭 봉원사 아미타괘불도
제작시기 1901
수량 1
규격 810.0×380.0
재질
관련유물 도량장엄 불화(20세기 초) 48점
소재지역 서울 서대문구
서울 봉원사 괘불도는 세로 810.0㎝, 가로 380.0㎝의 바탕에 아미타삼존을 중심으로 가섭존자, 아난존자, 문수동자, 보현동자를 그린 칠존도 형식의 야외 의식용 대형 불화이다. 하단 3곳의 붉은색 직사각형 안에 제작 시기, 봉안 장소, 제작과 시주에 참여한 인물 등을 기록한 화기를 남겼다. 대한국 광무 5년 신축(1901) 3월에 봉안한다고 밝히고, 황성(皇城) 밖 서령 삼각산 봉원사에 머물며 수월도량 공화불사에 참여한 증명, 송주, 지전, 금어, 도감, 화주 등을 맡았던 인물을 기록하였다. 감독은 은암당 규응(奎應) 등 3명의 스님이 맡았다. 제작은 금어 편수 한봉당 응작(應作)을 수화승으로 11명의 화승이 담당하였다. 시주에 참여한 인물은 왕실 인물과 일반 백성을 시주질과 시주기로 분리하여 기록하였다. 시주질에 황화방 경운궁에 사는 고종 태황제의 후궁 순빈 엄씨가 돌아가신 부모와 외가 조상들의 극락왕생을 발원한다고 적고, 사람들에게 시주를 권하고 모아 비용을 마련한 인권 화주로 상궁 을미생 김씨를 기록하였다. 시주기에는 경술생 이해붕이 아버지 경진생 이씨와 돌아가신 어머니 밀양 박씨 영가의 극락왕생 바란다고 적었다. 아미타불, 관음보살, 대세지보살로 구성된 아미타삼존 아래에 가섭존자, 아난존자를 배치하고, 붉은 원 안에 사자를 탄 문수동자, 코끼리를 탄 보현동자를 그렸다. 이와 같이 상단에 삼존상을 크게 그리고, 제자 2위, 하단에 동물에 올라탄 동자형 보살을 배치하는 구도는 19세기부터 나타나는 서울, 경기 지역의 특징적인 괘불 도상이다. 특히 1882년 제작된 아미타괘불도, 1892년 제작된 서울 봉국사 괘불도와 흡사하다. 중앙의 아미타불은 왼손을 가슴 앞까지 들어 올려 첫째 손가락과 셋째 손가락을 맞댔고, 왼손은 편 채로 아래로 내렸다. 괘불도와 관련된 유물로 도량장엄용 불화 48점이 전한다. 도량장엄용 불화는 야외 의식을 거행할 때 괘불도 주변에 걸리는 것으로, 현존하는 괘불도와 함께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모두 20세기 초에 제작되었다. 참고문헌 『괘불조사보고서』Ⅲ, 국립문화재연구소, 2004. 송천, 이종수, 허상호, 김정민(2011), 『한국의 불화 화기집』, 도서출판 성보문화재연구원. 『2014 서화관 테마전무량수불, 극락에서 만나다: 한미산 흥국사 괘불』, 국립중앙박물관, 2014. 『서울시보』제3240호, 서울특별시 시민소통기획관, 2014.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 포털〉 문화유산 검색,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봉원사 아미타괘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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