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정명칭 | 봉국사 아미타괘불도 |
|---|---|
| 제작시기 | 1892 |
| 수량 | 1 |
| 규격 | 700.0×382.0 |
| 소재지역 | 서울 성북구 |
서울 봉국사 괘불도는 세로 700.0㎝, 가로 382.0㎝의 바탕에 아미타불의 설법 장면을 그린 칠존도 형식의 야외 의식용 대형 불화이다.
하단 좌우 모서리의 붉은색 직사각형 안에 제작 시기, 봉안 장소, 제작자, 시주자 등을 기록한 화기를 남겼다. 1892년 상궁 5명을 비롯한 26명이 대시주로 참여하여 주상전하와 왕비, 세자저하와 빈궁의 장수를 발원하였다. 또 부처님의 광명은 더 빛나고, 복이 불어나기를 기원하였다. 당시 주상전하는 고종을 말한다. 시주에 참여한 상궁은 갑신생 하정덕혜, 경인생 공광명화, 병오생 정백련화 등이다. 상궁이 불화 제작 시주자로 적극 참여한 것은 이 시기 서울, 경기 지역에 나타나는 양상 가운데 하나이다. 그런데 봉안 장소로 기록된 ‘삼각산 봉국사(三角山奉國寺)’는 원래 쓴 글씨를 지우고 덧쓴 흔적이 뚜렷하다. 제작은 금곡 영환(金谷永煥)을 수화승으로, 한봉 창엽(漢峰瑲曄), 덕월 응륜(德月應崙) 등 14명의 화승이 담당하였다. 영환은 19세기 후반에 활동한 경기 지역의 대표적인 화승으로 30점 이상의 불화를 남겼다. 창엽은 영환의 화업에 여러 차례 동참하였던 주요 화승이다. 영환과 창엽은 1858년에는 수화승 영희(永羲) 아래서 남양주 흥국사 괘불도 조성에 참여하였고, 영환이 수화승으로 주도한 1895년 불암사 괘불도 조성에도 함께 하였다. 응륜도 영환이 수화승으로 주도한 불화 불사에 여러 차례 참여한 화승이다. 영환과 동참 화승들은 19세기 경기 지역 불화 양식 형성에 큰 영향을 끼쳤다.
아미타불, 관음보살, 대세지보살로 구성된 아미타삼존을 중심으로 제자 2위, 동자형 보살2위를 배치하였다. 이와 같이 상단에 삼존상을 크게 그리고, 가섭존자, 아난존자, 하단에 사자를 탄 문수동자, 코끼리를 탄 보현동자를 배치하는 구도는 19세기 서울, 경기 지역 괘불도에 자주 사용되었는데, 변화를 주어 상단의 불보살만 아미타삼존으로 그린 점이 특징적이다. 19세기 말~20세기 초 서울, 경기 지역에서는 이처럼 아미타불을 본존으로 한 괘불도가 유행하였다. 중앙의 아미타불은 왼손은 가슴 앞까지 들어 올려 첫째 손가락과 셋째 손가락을 맞댔고, 오른손은 펴서 아래로 길게 내렸다.
참고문헌
『한국 역대 서화가 사전』, 국립문화재연구소, 2011.
고승희(2015), 「금곡당 영환 작 천보산 불암사 괘불도 연구」, 『강좌미술사』44, 한국불교미술사학회(한국미술사연구소).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 포털〉 문화유산 검색,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봉국사 괘불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