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정명칭 | 합천 해인사 영산회괘불도 |
|---|---|
| 제작시기 | 1892 |
| 수량 | 1 |
| 규격 | 875.0×457.5 |
| 재질 | 삼베 |
| 관련유물 | 괘불함(1892 추정) 1점 |
| 소재지역 | 경남 합천군 |
합천 해인사 괘불도는 세로 875.0㎝, 가로 457.5㎝의 바탕에 석가모니불의 영산회 장면을 그린 구존도 형식의 야외 의식용 대형 불화이다.
하단 좌우 붉은색 직사각형 안에 제작 시기, 봉안 장소, 제작자, 시주자를 기록한 화기를 남겼다. 광서 18년 임진(1892) 윤6월 10일 점안하고 11일 봉안함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증명, 송주, 지전, 금어, 출초, 편수, 화주 등 불교 의식을 집행하고, 괘불도를 제작하는데 역할을 한 스님 명단을 기록하였다. 감독은 혜조(慧造), 천일(天日), 기용(紀溶) 3명의 스님이 담당하였다. 제작은 서암 전기(瑞庵典琪), 우송 상수(友松爽洙), 금어 2명과 출초 편수 사미승 두명(斗明)을 비롯한 화승 12명이 담당하였다. 시주는 을미생 박문환이 단독으로 하였는데, 자신과 부인 고씨, 아들, 딸이 복을 누리며 장수하고, 죽은 후에는 정토에 나기를 기원하였다. 이어서 산중대덕질 항목을 만들어 당시 사찰에 머물던 덕이 높은 스님 32명의 법명을 기록하였다. 또 소임질을 따로 만들어 당시 총섭, 산의 도감, 절의 도감, 지전, 판전, 수승, 삼강 등 관직을 제수 받았거나 사찰 운영 책임을 맡았던 스님 명단을 기록하였다. 화기 끝에 신도 여성 문대법화와 이선덕화를 적었다.
정면을 향해 서서 설법하는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위에서부터 아래로 가섭존자, 아난존자, 문수보살, 보현보살, 사천왕을 좌우 대칭으로 배치한 구도이다. 등장한 존상은 모두 서있는 자세인데, 부처님 양옆의 보살 2위만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본존 부처님은 원형 두광을 갖추고, 양어깨를 덮은 법의를 걸쳤다. 머리는 전체적으로 양감 있게 표현하였는데, 나발을 윤곽선으로 묘사하고 정상계주만 나타냈다. 두 손은 가슴 앞에서 손바닥을 위로 향한 채, 첫째 손가락과 가운데 손가락을 맞대었다.
괘불도와 관련된 유물로 길이 505.0㎝, 높이 48.5㎝의 목제 괘불함 1점이 남아 있다. 괘불도와 함께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한국의 불화』5 해인사 본말사편(하), (사)성보문화재연구원, 1997.
『괘불조사보고서』Ⅲ, 국립문화재연구소, 2004.
송천, 이종수, 허상호, 김정민(2011), 『한국의 불화 화기집』, 도서출판 성보문화재연구원.
『한국의 사찰문화재』전국사찰문화재 일제조사 경상남도Ⅰ, 문화재청, (재)불교문화재연구소, 2009.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 포털〉 문화유산 검색,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해인사 영산회괘불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