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정명칭 | 화계사 아미타괘불도 및 오여래도 |
|---|---|
| 제작시기 | 1886 |
| 수량 | 1 |
| 규격 | 710.0×404.0 |
| 재질 | 면 |
| 관련유물 | 괘불함(조선후기) 1점, 오여래도(1886) 5점, 인로왕보살도(1886) 2점 |
| 소재지역 | 서울 강북구 |
서울 화계사 괘불도는 세로 710.0㎝, 가로 404.0㎝의 바탕에 부처님이 정면을 향해 서서 설법하는 장면을 그린 야외 의식용 대형 불화이다.
하단 2곳의 붉은색 직사각형 안에 제작 시기, 봉안 장소, 발원문, 연화소질, 산중질, 대시주질을 기록한 화기를 남겼다. 광서 12년 병술(1886) 7월 삼각산 화계사에 봉안한다고 기록하고, 이 불사로 법계의 많은 사람이 함께 극락 언덕에 오르리라고 적었다. 연화소질에 증명, 송주, 지전, 금어, 출초, 편수 등 제작과 의식에 소임을 맡았던 스님 명단을 기록하였다. 감독은 용선당 완우(玩佑)를 비롯한 3명의 스님이 맡았고, 제작은 금어, 출초, 편수 등 10명이 담당하였는데, 밑그림은 혜산당 축연(竺衍)이 그리고 부일(富一)이 지휘하여 제작하였다. 산중질에 당시 사찰에서 실무를 담당한 스님 27명을 기록하였다. 대시주질에는 봉명신 상궁 천씨와 박씨가 제일 앞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데, 봉명신은 왕실의 명을 받았음을 의미한다. 상궁 천씨와 박씨가 왕실의 명을 받아, 대시주로 참여하여 당시 대왕대비 신정왕후 조씨와 왕대비 효정왕후 홍씨의 건강과 장수를 빌었다. 또 조동윤이 대왕대비의 돌아가신 아버지 충헌공과 조카 조영하의 영가 천도를 발원하였다. 끝 부분에 동참이라고 적고, 상궁 4명과 부부 한 쌍을 기록한 뒤 회향과 발원을 적었다.
부처님과 가섭존자, 아난존자, 관음보살, 사천왕을 그린 간단한 구성이다. 상단에는 부처님과 제자를 배치하고, 하단에는 관음보살과 사천왕을 배치하였다. 중앙에 서있는 자세로 상반신만 그려진 부처와 그 앞에 앉아 있는 관음보살 도상은 19세기 후반 서울, 경기 지역에서 성행했던 괘불도의 한 형식이다. 1879년에 제작된 서울 개운사 괘불도와 유사하지만, 본존 부처님이 연꽃을 들지 않았다는 점, 제자들이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본존은 왼손은 가슴 앞에 두고, 오른손은 어깨까지 들어 올려 엄지와 가운데 손가락을 맞대었다. 관음보살은 버드나무 가지를 꽂은 정병을 들고 연화대좌 위에 올라앉은 모습이다.
괘불도와 관련된 유물로 괘불함 1점과 오여래도 5점, 인로왕보살도 2점이 전한다. 괘불함은 조선후기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길이 420.5㎝, 높이 40.0㎝의 목제함이다. 오여래도와 인로왕보살도는 1886년 괘불도와 함께 제작되어, 불교 의식에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한국의 불화』35, 조계사 직할사암편(중), (사)성보문화재연구원, 2005.
『서울의 사찰불화』Ⅰ, 서울역사박물관, 2007.
송천, 이종수, 허상호, 김정민(2011), 『한국의 불화 화기집』, 도서출판 성보문화재연구원.
『한국의 사찰문화재』전국사찰문화재 일제조사 서울특별시, 문화재청, (재)불교문화재연구소, 2013.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 포털〉 문화유산 검색,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화계사 아미타괘불도 및 오여래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