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서울 경국사 괘불도

한자표기掛佛
지정명칭경국사 괘불도
제작시기1878
수량1
규격616.0×387.1
재질비단
관련유물다라니 주머니(시기미상) 3점
소재지역서울 성북구
서울 경국사 괘불도는 세로 616.0㎝, 가로 387.1㎝의 바탕에 정면을 향해 선 부처님과 보살을 그린 삼존도 형식의 야외 의식용 대형 불화이다. 하단 3곳에 조성 시기, 봉안 장소, 제작자, 시주자 등을 기록한 화기를 남겼다. 광서 4년 무인(1878) 5월 9일 경기 삼각산 경국사에 괘불 봉안이라고 기록하고, 고종과 명성황후 민씨, 익종비 신정왕후 조씨, 헌종계비 효정왕후 홍씨, 훗날 순종이 되는 세자의 건강과 장수를 빌며 제작함을 밝혔다. 제작과 의식에 관여한 인물을 기록한 연화질에는 증명, 송주, 출초, 편수, 금어, 지전, 별좌 등을 담당했던 스님들을 기록하였다. 감독은 예봉 학윤(禮峰學潤) 등 3명의 스님이 담당하였다. 밑그림은 덕월 응륜(德月應崙)이 그리고, 한봉 창엽(漢峰瑲燁)이 편수를 맡았다. 그리고 금곡 영환(金谷永環)을 비롯한 10명의 화승이 제작에 참여하였다. 창엽과 영환은 20년 전인 1858년에는 남양주 흥국사 괘불도 조성에 참여하였다. 본사질에는 창엽을 비롯해, 당시 절에 머물던 스님 21명을 기록하였다. 시주에는 100여 명이 기록되었는데 대시주질, 시주질, 시주 항목으로 나누어 시주자의 성별, 태어난 해, 성씨, 법명 등을 기록하였다. 대시주로 당시 병조판서였던 민겸호 부부와 대호군 서당보 부부, 횡성현감 오인표, 상궁 20여명 등이 참여하였다. 연꽃 위에 정면을 향해 선 삼존의 불보살만 그린 간략한 구성이다. 가운데 한발 물러나 선 부처님은 머리 뒤에 광배를 갖추고 양어깨를 덮는 변형된 편단우견 형식의 법의를 걸친 채, 오른손은 펴서 아래로 길게 내렸다. 머리는 육계를 높고 뾰족하게 그리고, 중앙계주와 정상계주를 표현하였다. 양옆의 두 보살은 머리 뒤에 원형 광배를 갖추고 보관을 썼는데 세부 장식과 손에 든 꽃의 종류만 다를 뿐 거의 동일하게 표현하였다. 부처님 왼쪽의 보살은 모란꽃을 들었고, 오른쪽의 보살은 연꽃을 들었다. 괘불도와 관련된 유물로 다라니 주머니가 괘불도 윗부분 3곳에 달려 있었다고 전하지만, 주머니의 수량, 모양 등 구체적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다. 참고문헌 『서울의 문화재』증보판 5 불교문화재(1), 서울특별시 시사편찬위원회, 2011. 송천, 이종수, 허상호, 김정민(2011), 『한국의 불화 화기집』, 도서출판 성보문화재연구원.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 포털〉 문화유산 검색,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경국사 괘불도’.

관련자료

지리정보

    • 내용
  • 위로
  • 불국토
    문화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