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표기 | 掛佛幀 |
|---|---|
| 지정명칭 | 의왕 청계사 비로자나삼신괘불도 |
| 제작시기 | 1862 |
| 수량 | 1 |
| 규격 | 600.0×330.0 |
| 재질 | 비단 |
| 관련유물 | 괘불함(시대미상) 1점 |
| 소재지역 | 경기 의왕시 |
의왕 청계사 괘불도는 세로 600.0㎝, 가로 330.0㎝의 바탕에 법신 비로자나불, 보신 노사나불, 화신 석가모니불로 구성된 삼신불을 그린 삼존도 형식의 야외 의식용 대형 불화이다.
하단 중앙, 붉은색 직사각형 안에 제작 시기, 제작과 시주에 참여한 인물 등을 기록한 화기를 남겼다. 동치 원년 임술(1862) 괘불탱을 새로 그려, 광주 청룡산 청계사에 봉안한다고 기록하였다. 주상전하와 왕비전하에 대한 축원을 적고, 상궁 임술생 차씨가 왕실의 명을 받들어 제작하였음을 밝혔다. 주상전하는 철종을 말한다. 제작에 직접 관여한 인물을 기록하는 연화질 항목에 증명, 송주, 금어, 별좌, 도감, 종두, 공사, 화주 등의 소임을 맡았던 스님 명단, 인권 화주를 맡았던 청신녀 기사생 한씨를 기록하였다. 감독은 은파당 법훈(法訓), 인성당 두찰(斗刹), 예봉당 학윤(學潤) 3명의 스님이 맡았다. 제작은 화남당 총선(摠善)과 윤익(潤益) 스님이 담당하였다. 괘불도 외 수화승 총선의 작품은 1866년에 제작한 양주 청련사 칠성도 1점만 남아 있어, 화승 관계나 화업에 대해 명확히 알 수 없다. 반면, 윤익은 경선 응석(慶船應釋), 금곡 영환(金谷永煥), 보암 긍법(普庵肯法) 등 여러 화승과 협업하며, 다수의 작품을 남겼다. 1901년에는 서울 봉원사 괘불도, 1902년에는 고양 흥국사 괘불도 제작에도 참여하였다. 마지막 부분에 ‘원이차공덕(願以此功德)’으로 시작하는 회향게를 적고, 임오생 임상현이라는 남성의 이름을 기록하였다.
정면을 바라보고 나란히 서 있는 세 부처님을 그린 단순한 구도이다. 가운데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왼쪽에 노사나불, 오른쪽에 석가모니불을 배치하였다. 삼존불은 양어깨를 덮는 법의를 걸치고, 육계가 솟아오른 머리에 정상계주와 중앙계주를 갖춘 부처의 모습이다. 노사나불은 17, 18세기에 보살의 모습으로 그려지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19세기 서울, 경기 지역에서는 주로 부처의 모습으로 그려졌다. 비로자나불은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아 지권인, 노사나불은 어깨 앞에서 양손을 펼친 설법인, 석가모니불은 오른손은 내리고 왼손은 어깨까지 들어 올린 손 모양을 취하였다.
참고문헌
『괘불조사보고서』Ⅰ, 국립문화재연구소, 1992.
송천, 이종수, 허상호, 김정민(2011), 『한국의 불화 화기집』, 도서출판 성보문화재연구원.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검색, ‘청계사삼신불괘불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