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표기 | 靈山掛佛幀 |
|---|---|
| 제작시기 | 1858 |
| 수량 | 1 |
| 규격 | 582.0×323.5 |
| 재질 | 비단 |
| 관련유물 | 괘불함(1858) 1점 |
| 소재지역 | 경기 남양주시 |
남양주 흥국사 괘불도는 세로 582.0㎝, 가로 323.5㎝의 바탕에 석가모니불의 영취산 설법 모임을 그린 삼존도 형식의 야외 의식용 대형 불화이다.
하단 3곳의 붉은색 직사각형 안에 제작 시기, 명칭, 봉안 장소, 시주자, 제작자 등을 기록한 화기를 남겼다. 함풍 8년 무오(1858) 9월 그믐날, 대영산괘불탱 한 축을 새로 조성함을 알리는 공양을 드리고, 10월 초7일 완성하여 경기우도 양주 수락산 흥국사에 봉안하였다고 기록하였다. 경성 남부 다방동에 사는 여성 신도 임술생 경주 김씨가 주상전하와 왕비전하의 장수를 빌고, 자신의 건강과 극락왕생, 또 돌아가신 부모님과 조상님의 극락왕생을 발원하며 시주하였다. 당시 주상전하는 철종을 말한다. 연화질에 증명, 송주, 지전, 화주, 금어, 개금 편수, 탱 편수 등의 소임을 담당하였던 스님 명단을 적었다. 감독은 인허 성유(印虛性惟), 용악 보위(聳嶽普衛), 동암 영선(桐庵永善) 3명이, 제작은 성운 영희(惺雲永羲)를 비롯한 금어, 개금 편수, 탱 편수 등 9명의 스님이 맡았다. 탱 편수 응석(應錫)은 1858∼1902년 이 절에서 불화 제작에 참여한 화승이다. 응석 다음에 기록된 창화(瑲嘩)도 경기도 일원에서 활약한 화승으로, 청룡사, 칠장사 등에 작품이 남아 있다. 연화질 마지막에 여성 신도 을유생 오씨의 혜해탈(慧解脫)과 건강을 발원한다고 적고, 절에 거주하던 스님 명단을 본사질에 기록하였다.
연꽃 위에 정면을 향해 선 삼존의 불보살만 그린 간략한 구성이다. 양옆의 두 보살상은 가운데 부처님보다 앞에 선 모습으로 배치하였다. 중앙 본존 부처님은 양어깨를 모두 가린 법의를 걸쳤다. 오른손은 어깨까지 들어 올려 손바닥을 위로 향한 채 엄지와 중지를 맞댔고, 왼손은 가슴 앞에서 엄지와 중지를 맞댔다. 머리의 육계는 낮지만 뾰족하게 묘사하고, 정상계주와 중앙계주를 표현하였다. 부처님 왼쪽의 보살은 부처님과 같은 옷을 걸치고 모란꽃을 손에 들었다. 오른쪽 보살은 일반적으로 보살이 걸치는 천의를 입고 연꽃을 들었다.
괘불도와 관련된 유물로 1858년에 제작된 괘불함 1점이 남아 있다. 괘불함은 길이 338.5㎝, 높이 33.0㎝의 목제함이다. 먹으로 제작 시기, 시주자와 발원 등을 기록하여, 괘불도 제작에 시주한 여성 임술생 경주 김씨의 시주로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괘불조사보고서』Ⅰ, 국립문화재연구소, 1992.
『한국의 불화』 33, 봉선사 본말사편, (사)성보문화재연구원, 2004.
송천, 이종수, 허상호, 김정민(2011), 『한국의 불화 화기집』, 도서출판 성보문화재연구원.
『한국의 사찰문화재 전국사찰문화재 일제조사-인천광역시, 경기도』, 문화재청, (재)불교문화재연구소, 2012.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검색, ‘흥국사영산회상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