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정명칭 | 천축사 비로자나삼신괘불도 |
|---|---|
| 제작시기 | 1858 |
| 수량 | 1 |
| 규격 | 525.0×324.0 |
| 재질 | 삼베 |
| 관련유물 | 괘불함(조선후기) 1점 |
| 소재지역 | 서울 도봉구 |
서울 천축사 괘불도는 세로 525.0㎝, 가로 324.0㎝의 바탕에 비로자나불, 노사나불, 석가모니불을 그린 삼존도 형식의 야외 의식용 대형 불화이다.
하단 중앙의 붉은색 직사각형 안에 조성 시기, 봉안 장소, 제작자, 시주자 등을 기록하고, 발원을 적은 화기를 남겼다. 함풍 8년 무오(1858) 3월, 도봉산 천축사 금화도량에 봉안한다고 기록하고, 증명, 금어, 송주, 지전, 화주, 공양주, 종두 소임 순으로 제작과 의식을 담당하였던 스님 명단을 기록하였다. 감독은 성봉당 대현(大鉉) 스님이 맡았다. 제작은 하운당 유경(有鏡) 스님을 수화사로, 창엽(瑲燁), 총지(聰持), 봉조(奉照), 총륜(聰崙) 스님이 담당하였다. 유경은 19세기 중엽 활동한 화승으로, 3년 후에는 서울 화계사 칠성도 제작에 참여하였다. 1861년 화계사 화업 당시, 수화승은 이 괘불도 제작의 동참 화원인 창엽이었다. 창엽은 금곡당 영환의 제자로서 경기 지역에서 가장 왕성하게 활동했던 화승이다. 또 창엽과 총륜은 같은 해 9월, 남양주 흥국사 괘불도 제작에도 참여하였다. 수화사 유경의 현존 작품이 2점뿐이기 때문에 그의 화업에 대해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서울, 경기 지역에서 활동한 것으로 보인다. 시주질에 시주자 4명에 대한 축원을 적고, 인권 시주로 여성신도 계축생 박씨 청정월을 기록하였다. 각각 건강히 오래 살고, 재앙을 만나지 않게 하며, 곡식이 날로 불어나 풍족하고, 모든 중생이 피안에 오르기를 바란다는 글을 적으며 화기를 마쳤다.
상단의 여백에만 구름을 표현하였을 뿐, 다른 존상이나 장식이 없이 오직 세 부처님으로 화면을 채웠다. 중앙에 지권인을 취한 법신 비로자나불, 왼쪽에는 설법인을 취한 보신 노사나불, 오른쪽에는 항마인을 취한 화신 석가모니불을 배치하였다. 각각 전형적인 손 모양을 취하고, 정면을 향해 선 모습이다. 삼존불 모두 양어깨를 덮는 법의를 걸쳤지만, 노사나불과 석가모니불은 보관을 썼다. 비로자나불은 머리의 나발을 윤곽선으로 표현하고, 뾰족한 육계에 정상계주와 중앙계주를 표현하였다.
괘불도와 관련된 유물로 괘불함 1점이 남아 있다. 길이 353.0㎝, 높이 33.2㎝의 목제함으로, 조선후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한국 역대 서화가 사전』, 국립문화재연구소, 2011.
『서울의 문화재』증보판 5 불교문화재(1), 서울특별시 시사편찬위원회, 2011.
송천, 이종수, 허상호, 김정민(2011), 『한국의 불화 화기집』, 도서출판 성보문화재연구원.
『한국의 사찰문화재 전국사찰문화재 일제조사-서울』, 문화재청, (재)불교문화재연구소, 2013.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 포털〉 문화유산 검색,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천축사 비로자나삼신괘불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