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표기 | 掛佛 |
|---|---|
| 지정명칭 | 서울 흥천사 비로자나불삼신괘불도 |
| 제작시기 | 1832 |
| 수량 | 1 |
| 규격 | 575.5 ×378.0 |
| 재질 | 비단 |
| 관련유물 | 복장낭 1점 및 복장물 1괄(시기미상), 복장낭형 장식물(시기미상) 2점, 괘불함(1884) 1점, 도량장엄번(조선말~근대) 16점 |
| 소재지역 | 서울 성북구 |
서울 신흥사 괘불도는 세로 575.5㎝, 가로 378.0㎝의 바탕에 비로자나불, 노사나불, 석가모니, 문수보살, 보현보살, 제자 2위를 그린 칠존도 형식의 야외 의식용 대형 불화이다.
하단 중앙, 붉은색 직사각형 안에 제작 시기, 봉안 장소, 시주와 제작에 관여한 인물 등을 기록한 화기를 남겼다. 도광 12년 임진(1832) 3월 21일 한양 동쪽 삼각산 신흥사에 항상 계시는 괘불을 봉안한 기록이라고 적은 뒤, 봉축문, 단록, 연화질을 기록하였다. 신흥사는 지금 서울 흥천사의 창건 당시 이름이다. 봉축문에 순조와 순원왕후 김씨, 빈궁 조씨(훗날 신정왕후), 세손(훗날 헌종)의 건강과 장수를 바란다고 기록하였는데, 세자가 아닌 세손을 축원한 이유는 효명세자(1809~1830)가 2년 전에 이미 서거했기 때문이다. 단록은 시주를 의미하는 단월(檀越) 명단을 말한다. 시주에는 순조의 가계로 연결되어 있는 왕실 인물들이 대거 참여하였다. 순조의 장인인 영안부원군 김조순(1765∼1832), 누이 부부, 첫째 딸과 셋째 딸 부부, 막내딸, 상궁 2명 등 13명의 직위, 생년, 성씨를 기록하였다. 연화질에 증명, 금어, 송주, 지전, 공사, 도감, 별좌, 화주 등을 기록하였는데, 감독은 도암 성기(道庵聖麒) 등 스님 3명이 맡았다. 제작은 화담 신선(華潭愼善)을 수화승으로 화승 17명이 담당하였다. 화담 신선은 19세기 경성화파를 대표하는 화승이다. 끝에 염화시중 고사를 노래한 게송을 적으며, 기록을 마쳤다.
비로자나불, 노사나불, 석가모니불 구성의 삼신불을 중심으로 가섭존자, 아난존자, 사자와 코끼리를 탄 동자 모습의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배치한 19세기 서울, 경기 지역을 대표하는 괘불 도상이다. 중앙의 비로자나불은 왼손 손가락을 펴고 있는 독특한 형태의 지권인으로 표현하고, 비로자나불 왼쪽의 노사나불은 장신구로 장엄한 모습이 아닌, 부처님의 모습으로 표현하여 삼신불 도상에 변화를 준 것으로 보인다.
괘불도와 관련된 유물로 복장낭 1점과 복장낭형 장식물 2점, 1884년 제작된 괘불함 1점이 남아 있다. 복장낭은 덮개는 잃어버린 채 주머니만 남아 있고, 안에 들어 있던 복장물은 해체하지 않은 상태이다. 복장낭형 장식물은 복장낭과 같은 모양이지만, 실제 복장물은 들어 있지 않았다. 괘불함에는 영산곽(靈山廓)이라는 이름과 병의 소멸, 복과 장수를 발원한 시주자와 화주 등을 음각으로 새겨놓았다. 이외 제작 시기는 다르지만, 야외 의식에 함께 사용되는 번(幡) 형태의 도량장엄용 불화 16점과 불연 2기가 흥천사에 전한다.
참고문헌
『괘불조사보고서』Ⅱ, 국립문화재연구소, 2000.
『한국 역대 서화가 사전』, 국립문화재연구소, 2011.
송천, 이종수, 허상호, 김정민(2011), 『한국의 불화 화기집』, 도서출판 성보문화재연구원.
『대형불화 정밀조사 보고서』46 보물 서울 흥천사 비로자나불 삼신괘불도, 문화재청, (사)성보문화재연구원, 2022.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 포털〉 문화유산 검색, ‘보물 서울 흥천사 비로자나불 삼신괘불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