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작시기 | 1809 |
|---|---|
| 수량 | 1 |
| 규격 | 716.5×331.2 |
| 재질 | 종이 |
| 소재지역 | 경북 김천시 |
김천 쌍비사 괘불도는 세로 716.5㎝, 가로 331.2㎝의 바탕에 단독의 부처님만 그린 독존도 형식의 야외 의식용 대형 불화이다.
하단 중앙의 붉은색 직사각형에 안에 제작 시기, 봉안 장소, 제작과 시주에 참여한 인물 등을 기록한 화기를 남겼다. 가경 13년 기사 6월 그렸다고 기록한 뒤, 대시주질, 연화질, 본사질을 기록하였다. 가경 13년은 1808년 무진년이고, 기사년은 가경 14년인 1809년이어서 제작 시기에 오류가 있다. 중국의 연호를 잘못 기록하는 경우가 빈번하기 때문에, 제작 시기는 1809년 6월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대시주질에 본읍의 향청, 사청, 공화당, 사창 등 관청 11곳, 화전동, 구교동, 정변, 민촌 등 마을 4곳, 계림사, 신흥사, 고방사, 백운암, 굴암 등 사찰 5곳에서 시주하였다고 기록하고, 개인적으로 시주한 인물 32명을 기록하여 관청 주도로 불사가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연화질에는 증명, 송주, 도감, 용안, 공양주, 화주 등 제작과 의식에 책임을 맡았던 스님들을 기록하였다. 용안(龍眼)은 1803년 김천 직지사 괘불도 화기에서 불화를 그리는 화원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된 이래, 청송 대전사, 문경 혜국사 불화 화기에서도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감독은 일암 지윤(日菴智潤) 등 스님 2명이 맡았고, 제작은 부첨(富添)과 여윤(如允) 스님이 담당하였다. 부첨은 경북 지역에서 활동한 화승으로, 1803년에는 직지사 괘불도 제작에 보조화원으로 참여하였다. 끝에 개령(현 김천시) 쌍비사에 봉안하였다고 밝히고 있지만, 김천 계림사에서 전해졌다. 쌍비사에 봉안되었던 괘불도가 언제 계림사로 옮겨졌는지 알 수 없지만,『개령현읍지』에 따르면 쌍비사는 1871년에서 1899년 사이 폐사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괘불도와 관련된 기록으로 1928년 6월 김천에서 괘불만 걸면 비가 온다는 전설을 믿고 괘불을 걸고 기도하였으나, 비가 오지 않자 사람들이 낙심했다는 내용의 신문기사가 전한다.
단독의 부처님만 그린 단순한 구성이다. 부처님은 오른 어깨를 살짝 덮은 변형된 편단우견 형식의 법의를 걸치고, 줄기까지 그려진 연화 위에 선 모습이다. 왼손은 가슴 앞에서 첫째 손가락과 셋째 손가락을 맞대고 오른손은 아래로 내려뜨린, 항마촉지인의 손 모양을 하였다. 몸에 비해 머리가 크고 목이 짧아, 어색한 신체 비례가 특징적인 부처님이다. 뒤에는 광배를 나타내었는데, 몸 광배 안에 당초무늬를 가득 채워 단조로운 구성에 변화를 주었다.
참고문헌
『한국의 사찰문화재』전국사찰문화재 일제조사 부산광역시, 울산광역시, 경상북도Ⅱ, 문화재청, (재)불교문화재연구소, 2008.
송천, 이종수, 허상호, 김정민(2011), 『한국의 불화 화기집』, 도서출판 성보문화재연구원.
『대형불화 정밀조사 보고서』32 김천 계림사 괘불도, 문화재청, (사)성보문화재연구원, 20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