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표기 | 掛佛 |
|---|---|
| 지정명칭 | 서울 청룡사 비로자나불삼신괘불도 |
| 제작시기 | 1806 |
| 수량 | 1 |
| 규격 | 527.0×332.0 |
| 재질 | 삼베 |
| 관련유물 | 괘불함(근대) 1점 |
| 소재지역 | 서울 종로구 |
서울 원통사 괘불도는 세로 527.0㎝, 가로 332.0㎝의 바탕에 비로자나불, 노사나불, 석가모니불을 그린 삼존도 형식의 야외 의식용 대형 불화이다.
하단의 붉은색 직사각형 3곳에 조성 시기, 봉안 장소, 시주자, 제작자 등을 기록한 화기를 남겼다. 가경 11년 병인(1806) 5월 8일 새로 괘불을 그려, 양주 도봉산 원통사에 봉안한다고 밝혔다. 그런데 종로구 청룡사에서 전해져, 어느 때인가 원통사에서 청룡사로 옮겨진 것으로 생각된다. 이 암자의 대공덕주인 보국진충 상궁 최씨가 주상전하 순종과 왕비전하의 장수를 발원한다고 기록한 뒤, 대시주질, 인권 대시주, 연화질, 주관 등을 기록하였다. 연화질에 증사, 송주, 지전, 금어, 공사, 숙두령, 종두, 화대, 정통, 도감, 별좌, 화주 등 제작과 의식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스님들을 기록하였다. 감독은 뇌묵당 등린(等獜) 스님이 맡았고, 제작은 수화승 민관(旻官)과 영탄(永坦), 환감(煥鑑), 보연(普演), 의정(義定) 스님이 담당하였다. 민관은 18세기 후반 경기 지역에서 활동한 망월사 소속의 화승이다. 『문효세자묘소도감의궤』(1786), 『화성성역의궤』(1801) 등에서도 이름이 확인되어, 왕실 능침 조성이나 화성 건립 등 국가 공역에 꾸준히 동원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비로자나불, 노사나불, 석가모니불로 이루어진 삼신불을 부각하여 그리고, 상단 양쪽에 흰코끼리를 탄 문수보살, 청사자를 탄 보현보살을 배치한 구성이다.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은 머리 양쪽에 상투를 올린 동자의 모습으로 표현하였는데, 이 도상은 이후 서울, 경기 지역 괘불도에서 그려지는 동자형 문수·보현보살상의 시원이다. 중앙의 비로자나불은 높이 솟아 오른 육계에 중앙계주, 정상계주를 갖춘 부처님의 모습으로, 양옆의 노사나불과 석가모니불은 머리에 보관을 쓰고 장신구를 착용한 보살의 모습으로 묘사하였다. 석가모니불을 보살의 모습으로 묘사한 점이 이례적이다. 비로자나불은 지권인, 노사나불은 설법인, 석가모니불은 항마촉지인의 손 모양을 취하였다.
괘불도와 관련된 유물로 근대에 제작된 괘불함 1점이 남아 있다. 괘불도를 보관하던 길이 364.5㎝, 높이 31.2㎝의 목제함이다.
참고문헌
『한국의 불화』35, 조계사 직할사암편(중), (사)성보문화재연구원, 2005.
『서울의 사찰불화』Ⅰ, 서울역사박물관, 2007.
『한국 역대 서화가 사전』, 국립문화재연구소, 2011.
송천, 이종수, 허상호, 김정민(2011), 『한국의 불화 화기집』, 도서출판 성보문화재연구원.
『한국의 사찰문화재』전국사찰문화재 일제조사 서울특별시, 문화재청, (재)불교문화재연구소, 20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