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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 직지사 괘불도

지정명칭 김천 직지사 괘불도
제작시기 1803
수량 1
규격 1,280.4×508.0
재질 삼베
관련유물 복장낭 1점 및 복장물 1괄(1803), 괘불함(1646) 1점, 괘불지주(조선후기) 2점, 「축원문」 (1803) 현판 1점
소재지역 경북 김천시
김천 직지사 괘불도는 세로 1,208.4㎝, 가로 508.0㎝의 바탕에 보살과 같은 모습으로 연꽃을 들고 설법하는 부처님을 그린 독존도 형식의 야외 의식용 대형 불화이다. 하단 2곳의 붉은색 직사각형 안에 제작 시기와 봉안 장소를 기록하고, 시주와 제작에 관여한 인물 등을 알 수 있는 연화질, 송주질, 용안질, 화주질, 시주질 등을 기록한 화기를 남겼다. 1803년 5월 직지사 대웅보전에 봉안한다고 밝히고, 연화질에 증사 8명, 용안질에 화승 13명을 기록하였다. 불화를 그리는 화원을 용면(龍眠)이라고도 하는데, 19세기 김천, 문경, 청송 지역 불화 화기에서 ‘용안(龍眼)’으로 기록한 사례가 여러 건 확인된다. 감독은 묵암 설봉(黙庵說封) 등이 맡았고, 제작은 수화원 제한(濟閑) 등 화승 13명이 담당하였다. 시주질에 채색, 바탕, 뒤 배접지 등에 시주한 35명을 기록하고, 경성 내 인권 대시주로 참여한 을유생 상궁 최씨를 별도로 기록하였다. 괘불도와 관련된 기록으로 왕실에 대한 축원의 글이 현판으로 남아 있다. 1803년 4월 대왕대비의 전교로 주상전하와 왕비전하의 장수, 세자의 생산을 축원하고, 나라의 태평과 백성안 편안을 발원한다고 기록하였다. 당시는 11세에 즉위한 순조를 대신하여 영조의 계비인 정순왕후가 수렴청정을 하던 시기이다. 정순왕후가 상궁 최씨를 내세워, 불사에 참여하며 순조와 왕비의 장수, 왕위를 이을 세자 생산을 발원한 것으로 보인다. 19세기 괘불도 중 가장 이른 시기의 작품이고, 큰 편에 속한다. 보살과 같은 모습으로 연꽃을 들고 설법하는 염화시중 도상의 부처님을 독존 형식으로 그리고, 머리 광배 옆으로 시방불과 화불 형태의 보살 5위를 배치한 구성이다. 부처님은 전신을 감싸는 광배를 갖추고, 연꽃이 피어오르는 연못에 선 모습이다. 보관과 장신구로 장엄한 보살의 모습이지만, 옷은 부처님의 격식에 맞는 법의를 입었다. 보관에 화불은 묘사되지 않았다. 괘불도와 관련된 유물로 복장낭 1점, 괘불함 1점, 괘불지주 2점이 남아 있다. 복장낭은 주머니 윗부분이 3개의 산봉우리 모양으로 된 조선후기 불화 복장낭의 전형이다. 내부에서 후령통, 봉합지, 경전, 다라니 등의 복장물이 확인되었다. 괘불함은 길이 590.8㎝, 높이 40.6㎝의 상자형 궤이다. 괘불도보다 157년 빠른, 1646년 제작된 것이어서 앞선 괘불도가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괘불지주의 높이는 133.0㎝~136.0㎝이다. 참고문헌 송천, 이종수, 허상호, 김정민(2011), 『한국의 불화 화기집』, 도서출판 성보문화재연구원. 『대형불화 정밀조사 보고서』25 김천 직지사괘불탱, 문화재청, (사)성보문화재연구원, 2019. 『보물 고려불화·괘불도』, 문화재청, 2020.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 포털〉 문화유산 검색, ‘보물 김천 직지사 괘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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