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정명칭 | 상주 남장사 영산회괘불도 |
|---|---|
| 제작시기 | 1788 |
| 수량 | 1 |
| 규격 | 1,066.7×645.5 |
| 재질 | 비단 |
| 관련유물 | 『불사성공록』(1788) 1책, 괘불함(조선시대) 1점, 괘불지주(조선시대) 2점 |
| 소재지역 | 경북 상주시 |
상주 남장사 괘불도는 세로 1,066.7㎝, 가로 645.5㎝의 바탕에 석가모니불의 영산회 장면을 그린 군도 형식의 야외 의식용 대형 불화이다.
하단 2곳의 붉은색 직사각형 안에 조성 시기, 봉안 장소를 기록하고, 시주와 제작에 관여한 인물 등을 알 수 있는 시주질, 본사질, 연화질, 회화소질을 기록한 화기를 남겼다. 건륭 53년 무신(1788) 4월 남장사에 봉안한다고 밝히고, 시주질에 시주자 30명, 본사질에 소임을 맡은 스님 31명을 기록하였다. 연화질과 회화소질에는 증명, 지전, 송주, 화사 등 제작과 의식에 직접 역할을 담당한 인물 80명을 기록하였다. 감독은 영파당 성규(聖奎) 등 스님 3명이 담당하였고, 제작은 용봉당 경환(敬還)과 도화사 상겸(尙謙) 등 화승 18명이 맡았다.
괘불도 관련 기록물로 『불사성공록(佛事成功錄)』이 전한다. 감독을 맡았던 성규 스님이 지은 「남장사괘불신화성기(南長寺掛佛新畵成記)』를 비롯한 6종의 기록으로 구성되었다. 괘불뿐 아니라 지장도, 시왕상 제작 등 1788년 남장사에서 일어난 불사의 전말을 확인할 수 있다. 돌아가신 성학(省學) 스님을 기리기 위해 제자들이 유명회(幽冥會)로 지장탱과 시왕탱을 제작하고, 손상된 괘불을 대신할 새로운 괘불을 제작하기로 뜻을 모으고, 장인 70여 명을 모아 장면을 나누어 그리게 하였다. 이때 호남의 쾌윤(快允)과 사불산 홍안(洪眼)은 유명회를 그렸고, 경성(지금의 서울)의 상겸은 영산회를 그렸는데 4월 초파일 시작해서 그달 28일에 끝냈다고 기록하고 있다.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보살 6위, 범천, 제석천, 가섭과 아난을 비롯한 제자 6위, 사천왕을 좌우 대칭으로 배치하였다. 석가모니불은 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법의를 걸치고, 오른손으로 연꽃가지를 잡았다. 왼손은 가슴 앞에서 손바닥을 위로 한 채 엄지, 중지, 약지를 살짝 구부렸다. 전신을 감싸고 있는 광배의 화염문 위에 화불 11위를 배치하고, 화면 둘레 변아에는 『조상경(造像經)』을 비롯한 여러 의식집의 복장 의식, 진언의 범자를 문양으로 그렸다.
괘불도와 관련된 유물로 조선시대 제작된 괘불함 1점, 괘불지주 2점이 남아 있다. 괘불함은 길이 689.7㎝, 높이 29.5㎝의 상자형 궤이다. 괘불지주는 높이 85.0㎝~101.0㎝로 현재 극락보전 앞에 세워져 있다.
참고문헌
『대형불화 정밀조사 보고서』17 남장사 영산회 괘불탱, 문화재청, (사)성보문화재연구원, 2018.
송천, 이종수, 허상호, 김정민(2011), 『한국의 불화 화기집』, 도서출판 성보문화재연구원.
『보물 고려불화·괘불도』, 문화재청, 2020.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 포털〉 문화유산 검색, ‘보물 상주 남장사 영산회 괘불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