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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 남장사 괘불도(1776)

한자표기 小靈山一位
지정명칭 상주 남장사 영산회괘불도 및 복장유물
제작시기 1776
수량 1
규격 1,101.4×590.0
재질 삼베
관련유물 복장낭 1점 및 복장물 1괄(1776 추정), 복장낭함(1783) 1점, 낙영 2점, 유소 1점(1776 추정)
소재지역 경북 김천시
상주 남장사 괘불도는 세로 1,101.4㎝, 가로 590.0㎝의 바탕에 영산회에 강림하신 석가모니불과 권속을 그린 군도 형식의 야외 의식용 대형 불화이다. 하단 붉은색 직사각형 안에 제작 시기, 봉안 장소, 시주와 제작에 참여한 인물 등을 기록한 화기를 남겼다. 건륭 41년 병신(1776) 10월 20일 소영산(小靈山) 1위를 그려, 상주 노악산 남장사에 봉안한다고 기록한 뒤, 왕실을 축원하고 나라와 백성의 평안을 발원하였다. 그리고 대시주질, 연화질, 증사질, 병법, 지전, 송주질, 용면질, 도감질 등 각 소임을 담당한 인물 명단을 기록하였다. 감독은 농산당 두기(㪷基)를 비롯한 스님 7명이 맡았다. 제작은 수화승 유성(有誠) 등 경상도 지역에서 활동한 화승 23명이 담당하였다. 유성은 1772년에는 서산 개심사 괘불도 제작을 주도하였다. 괘불도와 관련된 기록은 『불사성공록(佛事成功錄)』에서 확인할 수 있다. 1788년의 새로운 괘불 제작 경위를 상세히 남겼는데, 전에 있던 괘불이 그려진지 10여년 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기우재를 지내던 중 비에 젖고 채색이 떨어져 절의 나이든 이나 젊은이들이 모두 애달파 한지가 한 해가 지났다고 기록하고 있어, 1786년 경 기우재 때 비에 젖어 손상된 상태로 보관해 왔던 것으로 보인다.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보살 2위, 가섭존자, 아난존자, 용왕, 용녀, 사천왕 등을 좌우 대칭으로 배치한 구도이다. 석가모니불 머리 뒤에 원형의 광배를 나타내고, 그 위쪽에 화불 형식의 비로자나불, 시방불 10위를 배치하였다. 석가모니불은 오른쪽 어깨가 드러난 편단우견 형식의 법의를 걸치고, 오른팔을 길게 아래로 내려 촉지인의 손 모양을 한 모습이다. 화면 둘레에는 불교 의식집의 진언 14종을 범자 문양으로 그렸다. 괘불도와 관련된 유물로 복장낭과 복장낭함이 전한다. 복장낭은 낙영과 유소를 갖추고 있으며, 가로 66.0㎝, 세로 67.4㎝로 불화 복장낭 중 보기 드문 대형이다. 안에 동경, 후령통, 유리, 경전, 수륙재 의식집 등이 들어 있었다. 원찰(元察)이 바느질하여 제작하고, 복장물은 두기(㪷基) 스님이 봉인하였다. 복장낭을 보관하였던 복장낭함은 안쪽에 먹으로 건륭 48년 계묘 5월 조성이라고 기록하여, 1783년 5월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2020 문화재위원회(동산문화재분과) 제3차 회의록』, 문화재청, 2021. 『대형불화 정밀조사 보고서』17 남장사 영산회 괘불탱, 문화재청, (사)성보문화재연구원, 2018.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 포털〉 문화유산 검색, ‘보물 상주 남장사 영산회 괘불도 및 복장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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