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표기 | 靈山幀 |
|---|---|
| 지정명칭 | 학림사 삼신불괘불도 |
| 제작시기 | 1749 |
| 중수시기 | 1774 |
| 수량 | 1 |
| 규격 | 467.0×269.0 |
| 재질 | 비단 |
| 관련유물 | 괘불함(조선후기) 1점 |
| 소재지역 | 서울 노원구 |
서울 학림사 괘불도는 세로 467.0㎝, 가로 269.0㎝의 바탕에 비로자나불, 노사나불, 석가모니불을 그린 삼존도 형식의 야외 의식용 대형 불화이다. 서울 학림사에서 확인되었지만, 괘불궤에서 ‘양주 수락산 내원암 괘불’이라는 이름이 확인되고, 중수 후 원통암에 봉안하였다는 화기의 기록으로 보아, 어느 때 학림사로 옮겨 봉안한 것으로 추정된다.
하단의 붉은색 직사각형 2곳에 제작과 중수를 기록한 화기를 남겼다. 제작 화기에서 왕실에 대한 축원과 연화질이 확인된다. 연화질에 증사, 송주, 지전, 화사, 공양주 등 제작과 의식에 역할을 맡았던 스님들을 기록하였다. 감독은 민기(敏機) 스님이 맡았고, 제작은 초흠(楚欽), 칠혜(七惠), 태운(太云), 순경(順敬), 덕순(德淳), 시명(是明) 인위(印位), 성운(性云), 화승 8명이 담당하였다. 칠혜는 1735년 봉선사 괘불도 제작에도 참여하였다. 중수 화기에는 건륭 39년 갑오(1774) 3월 21일 영산탱을 중수하여 원통암에 봉안한다고 기록하고, 중수에 관여한 인물들을 기록하였다. 연화 항목에 증사, 지전, 양공, 공사, 도감, 별좌, 화주 등을 맡았던 스님을 기록하였다. 양공은 그림을 그린 화원을 말한다. 중수 감독은 처헌(處軒) 스님이 맡았고, 화승 처징(處澄), 원유(圓有), 보행(普行) 3명이 중수하였다. 중수 화기 밑 부분에서 ‘…사팔월(巳八月)’이라고 적은 흔적이 발견되어 조사한 결과, 건륭 14년 기사(1749) 8월이라는 글자가 확인되었다. 따라서 1749년 8월 제작되었고, 1774년 중수 후 원통암에 봉안하였음을 알 수 있다.
비로자나불, 노사나불, 석가모니불 구성의 삼존상만 크게 부각하여 그린 비로자나삼신 괘불 도상이다. 이 도상은 1735년 남양주 봉선사 괘불도로 제작된 이후, 19세기 서울, 경기 지역에서 유행한 괘불의 한 형식이 되었다. 비로자나불, 석가모니불은 편단우견 형식의 법의를 걸치고 높은 육계에 중앙계주, 정상계주를 갖춘 모습 모습으로, 노사나불은 보관과 장신구로 장엄한 모습으로 묘사하였다. 손 모양은 비로자나불은 지권인, 노사나불은 설법인, 석가모니불은 항마촉지인으로 표현하였다.
괘불도와 관련된 유물로 괘불함 1점이 남아 있다. 괘불함 길이 292.5㎝, 높이 29.7㎝이다. 함 안쪽에서 ‘양주 수락산 내원암 괘불궤’라는 이름과 기미년 제작, 세 군데 보정(補定)하고 옮겨 봉안(留鎭)하여 절의 대중에게 전한다는 먹으로 쓴 기록이 확인되었다.
참고문헌
『한국의 불화』35, 조계사 직할사암편(중), (사)성보문화재연구원, 2005.
『서울의 사찰불화』Ⅰ, 서울역사박물관, 2007.
『서울의 문화재』증보판 5 불교문화재(1), 서울특별시 시사편찬위원회, 2011.
송천, 이종수, 허상호, 김정민(2011), 『한국의 불화 화기집』, 도서출판 성보문화재연구원.
『한국의 사찰문화재』전국사찰문화재 일제조사 서울특별시, 문화재청, (재)불교문화재연구소, 2013.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 포털〉 문화유산 검색,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학림사 삼신괘불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