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표기 | 大靈山掛佛幀 |
|---|---|
| 지정명칭 | 개심사 영산회괘불탱 |
| 제작시기 | 1772 |
| 중수시기 | 1995, 2005 |
| 수량 | 1 |
| 규격 | 1,022.6×581.6 |
| 재질 | 삼베 |
| 관련유물 | 도량장엄번(1772) 14점, 괘불함(조선후기) 1점, 괘불지주(조선후기) 2점 |
| 소재지역 | 충남 서산시 |
서산 개심사 괘불도는 세로 1022.6㎝, 가로 581.6㎝의 바탕에 석가모니불을 그린 독존도 형식의 야외 의식용 대형 불화이다.
하단 2곳의 붉은색 직사각형 안에 제작 시기, 봉안 장소, 시주자, 왕실에 대한 축원, 제작에 관여한 인물 등을 기록한 화기를 남겼다. 건륭 37년 임진(1772) 12월 충남우도 서산 개심사에서 대영산괘불탱을 조성하였다고 기록한 뒤, 대시주로 참여한 청신거사 혜순(惠淳) 부부를 비롯한 시주자 74명을 기록하였다. 시주 항목은 족자 축(幀軸) 시주만 기록하였다. 일부에서 글자를 지우고 다시 적은 듯한 흔적이 확인되는데, 기록하는 과정에 오류가 있어 수정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연화질에는 증명, 송주, 지전, 화사, 공양주, 도감, 별좌, 정통, 부목, 대공덕 대화사 등 제작과 의식에 역할을 맡았던 인물들을 기록하였다. 감독은 우운당(友雲堂) 대선사가 맡았고, 제작은 유성(有誠) 등 화승 12명이 담당하였다. 수화승 유성은 경북 지역의 화승인데, 괘불도 제작을 위해 특별히 개심사에 초빙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유성의 가장 이른 작품은 1755년에 제작된 청도 운문사 비로자나삼신불회도이며, 남아 있는 불화 작품은 20건이다.
편단우견 형식의 법의를 걸친 석가모니불을 독존 형식으로 그리고, 비로자나불과 노사나불을 머리 광배 양쪽에 배치하여 삼신불을 이룬 구성이다. 석가모니불은 항마촉지인의 손 모양을 하였는데, 땅으로 내려뜨린 오른팔을 길게 그려 강조하였다. 광배 둘레에 화불 15위와 보살 2위를 좌우 대칭으로 배치하고, 머리 광배 위쪽에 구름을 타고 내려오는 시방불 6위를 배치하였다.
괘불도와 관련된 유물로 야외 의식에서 괘불도와 함께 사용되는 도량장엄용 불화 23점이 남아 있다. 이 가운데 제석도 1점, 범천도 1점, 팔금강도 8점. 사보살도 4점 등 14점은 번(幡) 형식이다. 화기에 1772년 괘불을 조성할 때 옹호신중으로 조성했으며 부일이 그렸다고 기록되어 있다. 부일은 괘불도 제작에도 참여한 화승이다. 나머지 9점은 1676년에 제작된 족자 형식의 오방제위도 5점, 사직사자도 4점도이다. 이 밖에 조선후기에 제작된 괘불함 1점과 괘불지주 2점이 남아 있다.
참고문헌
『괘불조사보고서』Ⅰ, 국립문화재연구소, 1992.
송천, 이종수, 허상호, 김정민(2011), 『한국의 불화 화기집』, 도서출판 성보문화재연구원.
『보물 고려불화·괘불도』, 문화재청, 2020.
『대형불화 정밀조사 보고서』27 보물 제1264호 개심사 영산회 괘불탱, 문화재청, (사)성보문화재연구원, 2020.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 포털〉 문화유산 검색, ‘보물 개심사 영산회 괘불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