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표기 | 掛佛幀 |
|---|---|
| 지정명칭 | 남해 용문사 영산회괘불탱 |
| 제작시기 | 1769 |
| 중수시기 | 1819, 1870 |
| 수량 | 1 |
| 규격 | 929.5×613.7 |
| 재질 | 삼베 |
| 관련유물 | 괘불함(1769 추정) 1점 |
| 소재지역 | 경남 남해군 |
남해 용문사 괘불도는 세로 929.5㎝, 가로 613.7㎝의 바탕에 영산회 의식에 초청되는 석가모니불과 보살을 그린 삼존도 형식의 야외 의식용 대형 불화이다.
하단 7곳의 붉은색 직사각형 안에 제작과 중수를 기록한 화기를 남겼다. 7개의 화기 중 4개는 조성 기록으로, 조선국 경상우도 남해현 동쪽 호구산 용문사 괘불탱을 새로 조성한 기록이라고 적고, 건륭 34년 기축(1769) 10월 22일 시작하여 11월 마지막 날 점안, 봉안하였다고 기록하였다. 이어서 본사질, 초창질, 시주질, 연화질을 기록하고, 회향 게송을 적었다. 시주자는 초장질과 시주질 2곳에 기록하였는데, 시주자들은 돌아가신 아버지와 스승 영가의 천도와 왕생, 살아계신 어머니의 수복, 자손 창성 등을 발원하였다. 시주질 글자 바로 위에 다른 필체로 쓴 ‘초창질(初刱秩)’은 중수 시주질과 구분하기 위해 후에 덧붙인 것으로 보인다. 연화질에는 증사, 송주, 화원, 공양주, 종두, 도감, 정통, 부목 등 제작과 의식에 직접 참여한 인물을 기록하였다. 감독은 봉성당 대선사 치헌(致憲)이 맡았고, 제작은 쾌윤(快玧) 등 화승 13명이 그렸다. 쾌윤은 전라도 순천 선암사를 중심으로 활동한 화원으로 쾌윤사(快允師), 선암사인(仙巖寺人), 윤총각(允總角)으로도 불렸다. 현재 30여 점이 넘는 불화 작품이 남아 있는데 의겸(義謙) 화풍을 이은 것으로 평가된다. 나머지 3개의 화기는 가경 24년 기묘(1819), 동치 9년 경오(1870), 두 차례의 중수 기록이다. 1819년에 찰감(札歛) 등 6명, 1870년에는 천여(天如) 등 11명의 화원이 중수에 참여하였다.
영산회 의식을 할 때, 절 마당에 불러 모시는 불보살 가운데 석가모니불과 협시보살 구성의 삼존상만 그린 도상이다. 17세기에 군도 형식의 영산회 괘불도가 주로 그려진 반면, 18세기에는 도상을 생략시킨 삼존, 오존, 칠존 형식의 영산회 괘불 도상이 유행하였다. 석가모니불은 편단우견 형식의 법의를 걸치고, 항마촉지인의 손 모양을 한 모습이다. 땅으로 내린 오른팔은 길게 늘어뜨려 촉지(觸地)의 손 모양을 강조하였다. 석가모니불 왼쪽의 보살은 여의, 오른쪽의 보살은 연꽃가지를 손에 들었다.
괘불도와 관련된 유물로 괘불함 1점이 남아 있다. 길이 664.5㎝, 높이 23.8㎝의 목제 상자형 궤로, 1769년 괘불도와 함께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2005 문화재위원회 회의록』[상권(건조물문화재분과, 동산문화재분과)], 문화재청, 2006.
『한국의 사찰문화재』전국사찰문화재 일제조사 경상남도Ⅰ, 문화재청, (재)불교문화재연구소, 2009.
송천, 이종수, 허상호, 김정민(2011), 『한국의 불화 화기집』, 도서출판 성보문화재연구원.
『보물 고려불화·괘불도』, 문화재청, 2020.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 포털〉 문화유산 검색, ‘보물 남해 용문사 괘불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