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표기 | 掛佛幀 |
|---|---|
| 지정명칭 | 오덕사 괘불탱 |
| 제작시기 | 1768 |
| 중수시기 | 2004 |
| 수량 | 1 |
| 규격 | 956.3×578.3 |
| 재질 | 삼베 |
| 소재지역 | 충남 부여군 |
부여 오덕사 괘불도는 세로 956.3㎝, 가로 578.3㎝의 바탕에 석가모니불, 약사불, 아미타불이 등장하는 설법 모임 장면을 그린 군도 형식의 야외 의식용 대형 불화이다.
하단 중앙 붉은색 직사각형 안에 제작 시기, 봉안 장소, 시주와 제작에 참여한 인물 등을 기록한 화기를 남겼다. 건륭 33년(1768) 5월 임천군(현 부여군) 서쪽 고개 천등산 오덕사 괘불탱을 조성하였다고 밝히고, 시주질, 연화질, 화원질을 기록하였다. 시주질에 대시주로 참여한 가선비구 수인(守忍)을 비롯하여 바탕, 점필, 복장, 원경, 인권, 공양 등에 시주한 100명이 넘는 인물을 기록하고, 연화질에는 증사, 지전, 지송으로 참여한 스님 5명을 기록하였다. 감독은 허성당 대사 대연(大衍) 등 스님 3명이 맡았다. 화원질에는 화승 10명을 기록하고, 목수, 공양주, 전·현주지, 노덕, 지사, 삼강, 화주, 별좌 등을 기록하였다. 제작에 참여한 화승은 유행(有幸), 혜안(惠眼), 성탄(性綻), 학성(學性), 혜정(惠定), 석첨(碩瞻), 득균(得均), 축민(竺旻), 현징(泫澄), 석름(釋凜)이다. 수화승 유행은 1772년 개심사 괘불도 제작에 참여한 것으로 확인되지만, 이외의 활동은 확인되지 않는다. 혜안은 1749년 장곡사 석가설법도 제작에 참여하였다. 끝부분에 장한중은 덧붙여 기록한다고 적고, 장한중 영가(靈駕)와 신태선 영가 등 이미 돌아가신 망자 2명을 기록하였다. 그리고 이 공덕이 일체에 널리 미쳐 우리들과 중생들이 다함께 불도를 이루길 바란다는 회향 게송을 적으며 마쳤다.
연꽃을 들고 설법하는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약사불, 아미타불, 사천왕, 타방불, 범천, 제석천, 팔부중, 제자 등을 좌우 대칭으로 배치한 구도이다. 석가모니불 양옆에 보살이 아닌, 사천왕이 비중 있게 배치된 점이 특징적이다. 석가모니불은 복견의(覆肩衣)를 더한 편단우견 형식의 법의를 걸쳤다. 허리를 길게 그려, 길쭉한 신체 모습이 특징적이다. 머리에는 나발, 정상계주, 중앙계주를 묘사하였다. 머리 광배 양옆의 약사불과 아미타불은 연화대좌에 결가부좌한 모습이다. 손에 약 그릇을 들고 있는 부처님이 약사불이다.
참고문헌
『괘불조사보고서』Ⅰ, 국립문화재연구소, 1992.
『한국의 사찰문화재』전국사찰문화재 일제조사 충청남도, 대전광역시, 문화재청, (재)대한불교조계종유지재단 문화유산발굴조사단, 2004.
송천, 이종수, 허상호, 김정민(2011), 『한국의 불화 화기집』, 도서출판 성보문화재연구원.
『보물 고려불화·괘불도』, 문화재청, 2020.
『대형불화 정밀조사 보고서』40 보물 제1339호 오덕사 괘불탱, 문화재청, (사)성보문화재연구원, 2021.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 포털〉 문화유산 검색, ‘보물 오덕사 괘불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