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정명칭 | 축서사 괘불탱 |
|---|---|
| 제작시기 | 1768 |
| 중수시기 | 2017 |
| 수량 | 1 |
| 규격 | 894.0×509.7 |
| 재질 | 비단 |
| 관련유물 | 복장낭 3점 및 복장물 1괄(1768), 괘불함(조선후기) 1점, 괘불지주(조선후기) 4점, 낙영(시기미상) 6점 |
| 소재지역 | 경북 봉화군 |
봉화 축서사 괘불도는 세로 894.0㎝, 가로 509.7㎝의 바탕에 단독의 석가모니불만 그린 독존도 형식의 야외 의식용 대형 불화이다.
하단 2곳의 붉은색 직사각형 안에 제작 시기, 봉안 장소, 시주와 제작에 참여한 인물 등을 기록한 화기를 남겼다. 건륭 33년 무자(1768) 3월 14일부터 25일 동안 그려 4월에 마치고 문수산 축서사 대적광전에 점안하여 봉안한다고 밝힌 뒤, 연화질을 기록하였다. 연화질에는 증사, 송주, 권공, 지향, 용면질, 대목, 야장, 별좌, 도감, 화주 등 제작과 의식에 직접 역할을 맡았던 인물을 기록하였다. 용면질의 용면(龍眠)은 화원 중 우두머리를 말한다. 감독은 여특(呂特) 등 스님 3명이 맡았고, 제작은 정일(定一)을 수화원으로 화원 10명이 담당하였다. 그리고 ‘바탕 채색 뒷면 배접지 설판[婆蕩彩色後排紙設判]’이라고 적은 뒤, 대시주로 참여한 황만창 부부 등 시주에 참여한 17명을 기록하였다. 화기 끝에 다른 글씨체로 쓴 이름은 추가로 기록한 시주자 명단으로 보인다.
괘불도와 관련된 기록으로 복장낭 안에서 발견된 원문(願文) 1매가 전한다. 화주 찬엽(贊燁) 스님의 만덕(萬德)존상 괘불 제작 공덕을 칭송하면서, 그 과정을 간략하게 기록하였다. 수월도량 공화불사를 1768년 3월 14일 시작하여 4월 12일 마쳤으며, 완성 후 고불식을 하였다고 기록하고, 시방세계의 모든 중생이 무상보리를 얻길 바란다는 발원을 남겼다.
편단우견 형식의 법의를 걸치고, 항마촉지인의 손 모양을 한 단독의 석가모니불 도상이다. 땅을 향해 아래로 내린 오른팔을 길게 그려 강조하였다. 신체 뒤에 원형 머리 광배와 연잎형 몸 광배를 나타내고, 광배 둘레는 화염문으로 장식하였다. 화염문 위에 화불 7위, 보살 2위를 좌우 대칭으로 배치하였는데, 광배 위에 화불이나 보살이 그려진 점은 새롭게 나타난 도상이다. 머리 광배 양 옆에 시방불 14위를 배치하고, 화면 둘레에는 『조상경(造像經)』의 복장, 점안 의식과 관련된 범자 문양 70개를 그렸다.
괘불도와 관련된 유물로 복장낭 3점, 괘불함 1점, 괘불지주 4점이 남아 있다. 복장낭은 복장물을 넣는 주머니로 괘불도와 함께 제작되었다. 내부에서 후령통, 사리, 원문, 다라니, 경전 등이 확인되었다. 괘불함 길이 535.4㎝, 높이 35.8㎝의 상자형 궤이고, 괘불지주는 높이 185.0~192.0㎝의 비석 형태로 보광전 앞에 세워져 있다. 괘불함과 괘불지주는 조선후기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괘불조사보고서』Ⅲ, 국립문화재연구소, 2004.
송천, 이종수, 허상호, 김정민(2011), 『한국의 불화 화기집』, 도서출판 성보문화재연구원.
『보물 고려불화·괘불도』, 문화재청, 2020.
『대형불화 정밀조사 보고서』39 보물 제1379호 축서사 괘불탱, 문화재청, (사)성보문화재연구원, 2021.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 포털〉 문화유산 검색, ‘보물 축서사 괘불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