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표기 | 掛佛 |
|---|---|
| 지정명칭 | 통도사 석가여래괘불탱 |
| 제작시기 | 1767 |
| 중수시기 | 1994 |
| 수량 | 1 |
| 규격 | 1,222.0×491.8 |
| 재질 | 삼베 |
| 관련유물 | 「개성괘불기」(1767) 현판 1점, 괘불함(조선시대) 1점, 괘불지주(조선시대) 4점, 괘불대(근대) 2점, 도르래(시기미상) 4점 |
| 소재지역 | 경남 양산시 |
양산 통도사 괘불도는 세로 1,222.0㎝, 가로 491.8㎝의 바탕에 보살과 같은 모습으로 연꽃을 들고 설법하는 석가모니불을 그린 독존도 형식의 야외 의식용 대형 불화이다.
하단 2곳의 붉은색 직사각형 안에 제작 시기, 봉안 장소, 시주와 제작에 참여한 인물 등을 기록한 화기를 남겼다. 건륭 32년 정해(1767) 9월 괘불 1점을 양산 통도사에 봉안한다고 밝히고, 본사질, 연화질, 공양주질, 시주질을 차례로 기록하였다. 본사질에 산중대덕 찬혜(贊惠) 등 주요 스님 22명을 기록하고, 연화질에는 증명, 송주, 경화, 삼지전, 도감 등의 책임을 맡았던 스님들을 기록하였다. 경화(敬畵)는 그림을 그리는 화원을 의미한다. 감독은 곽심(廓心) 스님이 맡았고, 제작은 두훈(抖薰) 등 화승 14명이 담당하였다. 수화승 두훈은 1년 전인 1766년 보은 법주사 괘불도 제작에도 수화승으로 주도하였다. 시주질에는 남편의 영가를 위해 대시주로 참여한 동래읍의 손씨 등 시주자 49명을 기록하였다. 괘불도 뒷면에는 1994년 보수 후에 기록한 연화질과 『오대진언집(五大眞言集)』, 『조상경(造像經)』에 수록된 진언이 기록되어 있다.
두훈 스님이 그린 보은 법주사 괘불도와 같은 밑그림(草本)을 기초로 한 도상이다. 연꽃을 들고 설법하는 단독의 석가모니불을 그리고, 뒤에는 원형의 머리광배와 연잎형 몸 광배를 표현하였다. 몸 광배 안에 모란꽃을 그려 넣고, 광배 둘레에는 구름을 배치하였다. 석가모니불은 보살과 같이 보관을 쓰고 장신구로 장엄하였지만, 옷은 양 어깨를 가린 형식의 법의를 걸쳤다. 화면 둘레 흰 바탕에는 『조상경』의 복장 의식과 관련된 범자 문양을 그렸다.
괘불도와 관련된 유물로 1767년 응암 희유(凝庵希有) 스님이 지은 ‘개성괘불기(改成掛佛記)’ 현판이 전한다. 세로 33.8㎝, 가로 210.5㎝의 나무 널판에 제작 시기, 괘불의 도상, 시주자 등을 기록하였는데, 화주로 불사를 주도한 태활(兌活) 스님이 석가여래 장육금신 화상(丈六金身畵像)을 조성하고 글을 청해, 짓게 되었다고 밝혔다. 이외 조선시대 제작으로 추정되는 괘불함 1점, 괘불지주 4점, 근대의 괘불대 2점, 시기 미상 도르래 4점이 남아 있다.
참고문헌
『대형불화 정밀조사 보고서』2 보물 제1350호 통도사 석가여래 괘불탱, 문화재청, (사)성보문화재연구원, 2016.
『보물 고려불화·괘불도』, 문화재청, 2020.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 포털〉 문화유산 검색, ‘보물 통도사 석가여래 괘불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