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표기 | 掛佛幀 |
|---|---|
| 지정명칭 | 법주사 괘불탱 |
| 제작시기 | 1766 |
| 수량 | 1 |
| 규격 | 1,423.7×645.0 |
| 재질 | 삼베 |
| 관련유물 | 괘불함(조선후기) 1점, 괘불지주(조선후기) 2점, 괘불대(근대) 2점, 괘불탱 유소(조선후기) 2점 |
| 소재지역 | 충북 보은군 |
보은 법주사 괘불도는 세로 1,423.7㎝, 가로 645.0㎝의 바탕에 연꽃을 들고 보살과 같은 모습으로 설법하는 부처님을 그린 독존도 형식의 야외 의식용 대형 불화이다. 현존하는 괘불도 가운데 가장 긴 작품이다.
하단 2곳의 붉은색 직사각형 안에 제작 시기, 봉안 장소, 시주와 제작에 참여한 인물 등을 기록한 화기를 남겼다. 건륭 31년 병술(1766) 5월 충청도 보은 속리산 대법주사에 봉안한다고 밝히고, 새로 그린 괘불탱 시주라고 적은 뒤 50명을 기록하였다. 제작 1년 전, 법주사에 영빈 이씨의 원당이 세워져 상궁이나 궁녀 여러 명이 시주에 참여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연화질, 본사질을 기록하였는데, 연화질에 증사, 송주, 지전, 금어 등 제작과 의식에 책임을 맡았던 인물을 기록하였다. 감독은 관성(觀性), 각징(覺澄) 스님이 맡았다. 제작은 두훈(枓訓) 등 화승 14명이 담당하였다. 두훈은 경기, 충청, 경상도 지역에서 활동한 화승으로, 1767년에는 양산 통도사에서 괘불도 제작을 주도하였다. 하단 중앙에 ‘주상주삼전하 수만세(主上主三殿下壽萬歲)’라고 기록하여, 왕실의 장수를 축원하였다.
괘불도 관련 기록으로 1939년 7월 18일의 동아일보 기사가 확인된다. 전대미문의 가뭄에 보은 속리산에서 7월 14일부터 괘불을 내걸고 기우재를 거행하였으나, 비가 오지 않아 곡물 가격이 폭등하였다는 내용이다.
연꽃을 들고 설법하는 부처님을 독존 형식으로 그리고, 뒤에 나타낸 광배 안에 모란꽃, 연꽃, 구름을 좌우 대칭으로 배치하였다. 꽃으로 장식된 보관과 장신구로 장엄한 보살의 모습이지만, 양 어깨를 가린 대의, 승각기, 복견의, 군의를 갖춰 입은 부처님의 옷차림을 한 모습이다. 화면 양쪽 끝에는 『조상경(造像經)』등 조선후기 의식집에 수록된 복장 의식과 관련된 범자문양을 그렸다.
괘불도와 관련된 유물로 조선후기의 괘불함 1점, 괘불지주 2점, 유소(流蘇) 2점과 근대에 제작된 괘불대 2점이 남아 있다. 괘불함은 길이 715.2㎝, 높이 37.5㎝이며, 먹과 음각으로 남긴 동유록(同遊錄) 등의 기록이 확인된다. 괘불지주는 원통전 왼쪽에 파손된 채로 놓여 있다. 유소는 실로 매듭짓거나 꼬아서 다는 술 장식으로, 불화에 남아 있는 사례는 드문 편이다. 법주사 괘불도 유소는 길이 631.0㎝~710.0㎝의 석류알 모양 매듭으로, 상축 고리에 묶인 채로 확인되었다. 괘불대의 길이는 1,386.0~1,396.5㎝이다.
참고문헌
『괘불조사보고서』Ⅰ, 국립문화재연구소, 1992.
『동산문화재 지정보고서(96~97 지정편)』, 문화재관리국, 1998.
『대형불화 정밀조사 보고서』30 보물 제1259호 법주사 괘불탱, 문화재청, (사)성보문화재연구원, 2020.
송천, 이종수, 허상호, 김정민(2011), 『한국의 불화 화기집』, 도서출판 성보문화재연구원.
『보물 고려불화·괘불도』, 문화재청, 2020.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 포털〉 문화유산 검색, ‘보물 법주사 괘불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