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표기 | 靈山掛佛幀 |
|---|---|
| 지정명칭 | 해남 대흥사 영산회괘불탱 |
| 제작시기 | 1764 |
| 수량 | 1 |
| 규격 | 1,036.0×791.0 |
| 재질 | 삼베 |
| 관련유물 | 괘불함(1764) 1점, 「점안소」(1764)『임하록』 |
| 소재지역 | 전남 해남군 |
해남 대흥사 괘불도는 세로 1,036.0㎝, 가로 791.0㎝의 바탕에 영산회 의식에 초청되는 불보살을 그린 오존도 형식의 야외 의식용 대형 불화이다.
시주한 인물, 제작 시기, 봉안 장소, 신족질, 연화질, 왕실에 대한 축원문 등을 기록한 화기가 남아 있다. 첫머리에 체잠(體岑) 스님 단독 시주로 제작되었음을 밝히고, 건륭 29년 갑신(1764) 3월 해남현 대둔사 영산괘불탱을 봉안한다고 기록하였다. 대둔사는 대흥사의 옛 이름이다. 체잠 스님이 돌아가신 은사 연호(演湖), 조사 회색(懷賾), 낳아주신 부모님, 조상님의 영가, 동생 부부를 위해 시주하여 제작하였다. 연화질에 증명, 지주, 금어 색민(色敏)을 비롯한 화원 26명, 화주, 도감 등 제작과 의식에 직접 참여한 인물 55명을 기록하였다. 감독은 처관(處寬), 광학(光學), 탁계(卓桂) 스님이 맡았다. 수화승으로 제작을 지휘한 색민은 18세기 호남을 대표하는 화승이다. 수화승이 되기 전에는 조계산 화파의 의겸(義謙)의 문하에서 1745년 나주 보흥사, 1749년 부안 개암사 괘불도 제작에 참여하였다. 괘불도 뒷면에 대흥사의 각 건물 이름과 스님 명단을 기록한 한지를 붙여놓아, 당시 대흥사에 7채의 전각, 11채의 당(堂), 13개의 암자, 4채의 요사가 있었고, 스님 630여 명이 거주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괘불도 관련 기록으로 당시 대둔사 주지였던 연담 유일(蓮潭有一) 스님의 『임하록(林下錄)』에 실린 「점안소(點眼䟽)」가 전한다. 1764년 봄, 대둔사에서 삼존장륙괘불 한 축과 여러 점의 불화 조성 불사를 마치고 베푼 점안 법회 때 올린 글이다.
『오종범음집(五種梵音集)』에 따라 거행하는 영산회 의식 때, 이름을 불러 초청하는 석가모니불, 문수보살, 보현보살, 관음보살, 아미타불을 그린 도상이다. 석가모니불, 문수보살, 보현보살 구성의 삼존불을 크게 부각하여 그리고, 위쪽에 관음보살, 아미타불을 배치하였다. 석가모니불은 항마촉지인의 손 모양을 취하였는데, 땅으로 내린 오른팔을 길게 그려 강조하였다. 문수보살은 여의, 보현보살은 연꽃 가지를 손에 든 모습이다.
괘불도와 관련된 유물로 괘불함 1점이 남아 있다. 1764년 제작된 목제 상자형 궤로, 궤에 제작 시기, 제작자, 시주자 등을 먹으로 기록하여 남겼다. 또 영산탱, 무량수탱, 삼장탱, 좌우제석 등 다수의 불화를 함께 제작하였다고 기록하였다.
참고문헌
『한국의 불화』31 대흥사 본말사편, (사)성보문화재연구원, 2004.
『2007 문화재위원회 회의록』[상권(국보지정분과·건축문화재분과·동산문화재분과)], 문화재청, 2008.
『한국 역대 서화가 사전』, 국립문화재연구소, 2011.
송천, 이종수, 허상호, 김정민(2011), 『한국의 불화 화기집』, 도서출판 성보문화재연구원.
『보물 고려불화·괘불도』, 문화재청, 2020.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 포털〉 문화유산 검색, ‘보물 해남 대흥사 영산회 괘불탱’.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 검색, ‘연담대사 임하록 제3권 점안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