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표기 | 掛佛幀 |
|---|---|
| 지정명칭 | 흥국사 노사나괘불탱 |
| 제작시기 | 1759 |
| 중수시기 | 1997이전, 1997 |
| 수량 | 1 |
| 규격 | 1,273.2×777.7 |
| 재질 | 비단 |
| 관련유물 | 괘불함(1688) 1점, 괘불지주(1659) 4점 |
| 소재지역 | 전남 여수시 |
여수 흥국사 괘불도는 세로 1,273.2㎝, 가로 777.7㎝의 바탕에 보살과 같은 모습으로 설법하는 부처님을 그린 독존도 형식의 야외 의식용 대형 불화이다.
하단 중앙의 붉은색 직사각형 안에 제작 시기, 봉안 장소, 시주와 제작에 참여한 인물 등을 기록한 화기를 남겼다. 건륭 24년 기묘(1759) 4월 전라좌도 순천부 동쪽 고개 영취산 흥국사에 괘불탱을 조성, 봉안한다고 밝힌 뒤, 왕실과 국가의 안녕을 축원하고 시주자와 발원, 연화질을 기록하였다. 시주에 스승과 부모의 영가천도를 빌며 총 223명이 참여하였다. 시주자 중에 나이가 같은 사람들끼리 결성한 갑계 회원들의 참여가 눈에 띈다. 연화질에 증명, 지전, 어산, 금어, 편수 등 제작과 의식에 직접 역할을 맡았던 인물 58명을 기록하였다. 감독은 긍안(亘眼), 처관(處寬), 탁계(卓桂) 대선사 3명이 맡았다. 제작은 비현(丕賢)과 편수 즉민(卽琝) 등 화승 13명이 담당하였다. 비현은 의겸과 그 제자 긍천에 이어, 18세기 후반 전라도에서 활약한 화승이다. 1778년 고흥 금탑사, 1783년 화순 만연사 괘불도 제작에도 수화승으로 참여하였다. 괘불도 뒷면에는 시주자와 당시 흥국사의 전각, 암자에 머물던 스님 등 1500여 명을 적은 종이 5매가 붙어있다. 앞면에 기록하지 못한 인물을 추가한 것으로 보인다.
노사나불의 손 모양인 설법인(說法印)을 한 부처님을 독존 형식으로 그리고, 다리 옆에 보탑, 머리 광배 옆에는 전각을 배치한 구도이다. 본존 부처님은 보살처럼 장엄하고 머리에 화불 6위가 봉안된 보관을 썼지만, 양어깨를 가린 대의와 승각기, 복견의, 군의 등 부처님의 격식에 맞는 법의를 갖춰 입은 모습으로 묘사하였다.
괘불도와 관련된 유물로 괘불도보다 앞선 1659년에 세워진 괘불지주 4점과 1688년에 제작된 괘불함 1점이 남아 있어, 이전에도 흥국사에 괘불도가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괘불지주는 높이 126.0~141.0㎝로, 대웅전 앞에 세워져 있다. 음각으로 새긴 ‘순치16…조(順治十六…造)’라는 글이 확인되어, 제작 시기를 알 수 있다. 괘불함은 길이 816.0㎝, 높이 345.0㎝의 상자형 궤이다. 덮개 안쪽에서 제작 시기, 시주자, 목수와 철물 장인 등에 대한 기록과 1940년의 수리 기록이 확인된다.
참고문헌
『괘불조사보고서』Ⅱ, 국립문화재연구소, 2000.
『대형불화 정밀조사 보고서』16 보물 제1331호 흥국사 노사나불 괘불탱, 문화재청, (사)성보문화재연구원, 2018.
『보물 고려불화·괘불도』, 문화재청, 2020.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 포털〉 문화유산 검색, ‘보물 흥국사 노사나불 괘불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