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표기 | 掛佛靈山敎主 釋迦牟尼佛 萬德尊像 |
|---|---|
| 지정명칭 | 선암사 석가모니불괘불탱 및 부속유물 일괄 |
| 제작시기 | 1753 |
| 중수시기 | 1990년대 초 |
| 수량 | 1 |
| 규격 | 1,318.0×722.0 |
| 재질 | 비단 |
| 관련유물 | 복장낭 1점 및 복장물 1괄(1757), 괘불함(1757) 1점 |
| 소재지역 | 전남 순천시 |
순천 선암사 괘불도는 세로 1,318.0㎝, 가로 722.0㎝의 바탕에 『법화경』「견보탑품」의 석가모니불 설법 장면을 그린 독존도 형식의 야외 의식용 대형 불화이다.
하단 3곳에 제작 시기, 제작자, 시주자 등을 기록한 화기를 남겼다. 건륭 18년 계유(1753) 10월, 괘불 ‘영산교주 석가모니불 만덕존상탱(靈山敎主釋迦牟尼佛’萬德尊相)‘을 새로 그렸다고 밝힌 뒤, 연화질, 대시주질, 시주 영가질, 시주 대선사질 등을 기록하였다. 감독은 위정(偉鼎) 등 대선사 3명이 맡았고, 제작은 금어 은기(隱奇) 등 금어와 화사 13명이 담당하였다. 이들 13명은 18세기 전반 조계산문의 대표적 화승 의겸(義謙) 유파로, 주로 전라도 지역에서 활동한 화승들이다. 시주에 참여한 인물들은 총 200명이다. 돌아가신 부모, 형제, 스승 등의 혼령을 위로하기 위해 시주하거나 망자가 서방극락에 태어나길 빌며 망자의 이름으로 시주하기도 하였다. 괘불도 뒷면에는 당시 선암사의 암자와 전각, 거주하던 스님들의 명단을 기록하였다.
괘불도와 관련된 기록으로 복장낭에서 발견된 발원문 3매가 있다. 감색 종이에 붉은색 글씨로 쓴 ‘신성괘불발원문(新成掛佛發願文)’, 흰 종이에 먹으로 쓴 ‘신성괘불원문(新成掛佛願文)’과 ‘신성괘불시주원문(新成‘掛佛施主願文)’에 각 존상의 이름을 밝히고, 시주자 68명을 기록하였다. 그리고 선암사 33조사도 11폭, 대흥사, 태안사 명적암, 천자암, 청계사 등에 26점의 불화를 동시에 봉안하였다고 기록하여, 당시 선암사에서 조계산 화파가 참여한 대규모 불화 불사가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중앙에 서있는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광배 옆 다보불과 시방불로 구성된 「견보탑품」의 설법 장면을 그린 도상이다. 석가모니불을 크게 부각하여 편단우견의 독존 형식으로 그렸다. 손 모양은 항마촉지인을 취하였는데, 아래로 늘어뜨린 오른팔을 길게 그려 강조하였다. 다보불은 탑 안에 앉은 모습으로, 시방불은 사자에 올라 앉아 구름을 타고 내려오는 모습으로 묘사하였다.
괘불도와 관련된 유물로 복장낭 1점, 괘불함 1점이 남아 있다. 복장낭 내부에서 후령통, 발원문, 다라니 등의 복장물이 확인되었다. 괘불함은 길이 781.0㎝, 높이 42.0㎝의 긴 장방형 상자이다. 내부에 먹으로 남긴 기록에 의하면, 1757년 6월 나무를 다루는 장인 3명, 철물을 다루는 장인 1명이 참여하여 제작하였다.
참고문헌
『2004 문화재위원회 회의록』[상권(건조물문화재분과, 동산문화재분과)], 문화재청, 2005.
『한국의 사찰문화재』전국사찰문화재 일제조사 광주광역시, 전라남도Ⅰ, 문화재청, (재)대한불교조계종유지재단 문화유산발굴조사단, 2006.
송천, 이종수, 허상호, 김정민(2011), 『한국의 불화 화기집』, 도서출판 성보문화재연구원.
『보물 고려불화·괘불도』, 문화재청, 2020.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 포털〉 문화유산 검색, ‘보물 선암사 석가모니불 괘불탱 및 부속유물 일괄’.
한국학중앙연구원, 〈향토문화전자대전〉 디지털순천문화대전 통합 검색, ‘선암사 석가모니불 괘불탱 및 부속유물 일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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