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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 광덕사 괘불도

한자표기掛佛幀
지정명칭광덕사 노사나불괘불탱
제작시기1749
중수시기1798, 1932, 1995
수량1
규격1,141.0×751.4
재질삼베
관련유물괘불함(1748) 1점
소재지역충남 천안시
천안 광덕사 괘불도는 세로 1,141.0㎝, 가로 751.4㎝의 바탕에 노사나불의 설법 모임 장면을 그린 구존도 형식의 야외 의식용 대형 불화이다. 별도의 화기란 없이, 가장자리 3곳에 제작과 중수를 기록한 화기를 남겼다. 건륭 15년 기사(1749) 3월 21일 천안 광덕사 괘불탱을 시작하여 4월 그믐에 마쳤다고 기록한 뒤, 시주질, 사중질, 산중질, 연화질을 기록하였다. 시주질에 홍승길 부부와 배접에 시주한 진찰(震察) 스님 등 시주에 참여한 인물 113명을 기록하고, 연화질에 증사, 지전, 송주, 화사, 공양주, 부목, 별좌, 화주 등 제작과 의식에 역할을 담당한 인물 23명을 기록하였다. 감독은 각민(覺旻)과 의성(義性) 스님이 맡았고, 제작은 사혜(思惠), 광감(廣瑊), 인찰(印察) 스님 등 화승 7명이 담당하였다. 사혜와 인찰은 1750년 예산 대련사 괘불도 제작에도 함께 참여하였다. 중수는 정조 때인 1798년과 1932년, 두 차례 있었다. 괘불도와 관련된 기록으로 70년만의 기록적인 가뭄에 괘불도를 내걸고 기우재를 지냈으나 끝내 비가 오지 않았다는 1939년 7월의 동아일보 기사가 확인된다. 노사나불을 중심으로 문수보살, 보현보살, 가섭존자, 아난존자, 사천왕, 시방불을 좌우 대칭으로 배치한 구도이다. 중앙의 노사나불은 보관과 장신구로 장엄한 보살의 모습이다. 크고 높은 보관에는 과거 칠불을 상징하는 화불 7위가 봉안되었다. 오른쪽 어깨를 살짝 가린 변형된 편단우견 형식의 법의를 걸치고, 양손을 들어 올려 펼친 설법인의 손 모양을 하고 있다. 대의에는 옴·마·니·메·훔·람 등의 육자대명진언과 정법계진언을 도안화한 문양을 금박으로 표현하였다. 양옆의 보살은 거의 비슷한 모습이지만, 문수보살은 『화엄경』이 올려진 연꽃을 들었고, 보현보살은 연봉오리가 달린 꽃가지를 들었다. 가섭존자는 나이 든 스님, 아난존자는 젊은 스님의 모습으로 묘사되었다. 사천왕은 칼, 비파, 용과 여의주, 보당과 탑을 지물로 각각 손에 들었다. 상축 부분에 『조상경(造像經)』의 불복장과 관련된 범자 문양을 그려 넣었다. 괘불도와 관련된 유물로 길이 882.4㎝, 높이 32.2㎝의 괘불함 1점이 남아 있다. 함 앞면에 1748년 5월 해징(海澄) 스님이 시주하여 장인 박선창이 제작하였다고 기록을 남겨, 괘불도보다 1년 먼저 제작된 것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괘불조사보고서』Ⅰ, 국립문화재연구소, 1992. 『동산문화재 지정보고서(96~97 지정편)』, 문화재관리국, 1998. 송천, 이종수, 허상호, 김정민(2011), 『한국의 불화 화기집』, 도서출판 성보문화재연구원. 『대형불화 정밀조사 보고서』20 보물 제1261호 광덕사 노사나불 괘불탱, 문화재청, (사)성보문화재연구원, 2019.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 포털〉 문화유산 검색, ‘보물 광덕사 노사나불 괘불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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