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표기 | 掛佛 |
|---|---|
| 지정명칭 | 다보사 괘불탱 |
| 제작시기 | 1745 |
| 중수시기 | 2006 |
| 수량 | 1 |
| 규격 | 1,163.0×802.7 |
| 재질 | 삼베 |
| 관련유물 | 괘불함(조선후기) 1점 |
| 소재지역 | 전남 나주시 |
나주 보흥사 괘불도는 세로 1,163.0㎝, 가로 802.7㎝의 바탕에 영산회 의식에 초청되는 불보살을 그린 칠존도 형식의 야외 의식용 대형 불화이다.
하단 좌우 모서리, 붉은색 직사각형 안에 제작 시기, 봉안 장소, 왕실에 대한 축원, 시주질, 연화질을 기록하고, 회향게를 적은 화기를 남겼다. 건륭 10년 을축(1745) 7월 괘불을 새로 조성하여 금성산 보흥사에 봉안한다고 기록한 뒤, 왕실의 장수를 축원하였다. 그런데 이 괘불도는 나주 다보사에서 전해져, 본래 보흥사에 봉안되었다가 옮겨진 것임을 알 수 있다. 금성산 보흥사라는 절은 현재 남아 있지 않고, 절터나 관련 기록도 확인되지 않는다. 시주 항목을 대시주, 바탕천, 공양, 후배, 보시 등으로 구분하고, 이에 참여한 인물 112명을 기록하였다. 연화질에 증사, 지전, 송주, 화원, 공양주, 부목, 내왕, 별좌, 도감, 산중노덕, 주지, 삼강, 기사, 후령 야장, 연축 비구, 화주 등을 담당한 인물 19명을 기록하였다. 감독은 대선사 내연(乃演)이 맡았고, 제작은 의겸(義謙)을 비롯한 화승 10명이 담당하였다.
괘불도와 관련된 기록으로 1932년의 동아일보 기사가 확인된다. 50원을 지출하여 다보사 괘불을 나주시장에 걸어놓고, 수일 동안 스님이 기도를 드리던 중 비가 내렸다는 내용이다. 또 이와 같이 비가 즉시 내린다 하여, 사람들이 더욱 그 영험을 믿게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석가모니불, 문수보살, 보현보살, 아미타불, 다보불, 관음보살, 세지보살로 구성된, 『오종범음집(五種梵音集)』의 영산회 의식 거불 절차를 따른 도상이다. 각 존상의 머리 광배 안에 황색으로 각각의 이름을 기록하였다. 아미타불이 석가모니불의 오른쪽 위에 배치되는 일반적 구도와 달리, 왼쪽 위에 ‘아미타불’이라고 기록되어 있어 혼동하여 적은 것으로 보인다. 중앙의 석가모니불은 편단우견 형식의 법의를 걸친 모습으로 그리고, ‘영산교주 석가여래불’이라고 왼쪽 귀 옆에 적었다. 오른팔을 길게 그려 촉지인의 손 모양을 강조하였다. 각 존상의 눈, 코, 입 등의 상호와 신체에 불복장 의식과 관련된 범자를 붉은색으로 그려 넣었다.
괘불도와 관련된 유물로 괘불함 1점이 남아 있다. 괘불함은 길이 894.6㎝, 높이 37.0㎝로 조선후기에 제작되었으며, 바닥면에 불사의 공덕을 회향하는 게송을 먹으로 남겼다.
참고문헌
『괘불조사보고서』Ⅱ, 국립문화재연구소, 2000.
송천, 이종수, 허상호, 김정민(2011), 『한국의 불화 화기집』, 도서출판 성보문화재연구원.
『대형불화 정밀조사 보고서』15 보물 제1343호 다보사 괘불탱, 문화재청, (사)성보문화재연구원, 2018.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 포털〉 문화유산 검색, ‘보물 다보사 괘불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