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표기 | 掛佛幀 |
|---|---|
| 지정명칭 | 영주 부석사 오불회괘불탱 |
| 제작시기 | 1745 |
| 수량 | 1 |
| 규격 | 850.0×582.0 |
| 재질 | 비단 |
| 소재지역 | 경북 영주시 |
영주 부석사 괘불도는 세로 850.0㎝, 가로 582.0㎝의 바탕에 다섯 부처님의 설법 모임 장면을 그린 군도 형식의 야외 의식용 대형 불화이다.
하단 중앙의 붉은색 직사각형 안에 제작 시기, 봉안 장소, 시주와 제작에 관여한 인물 등을 기록한 화기를 남겼다. 건륭 10년 을축(1745) 4월 괘불탱을 부석사에 봉안한다고 기록한 뒤, 시주질, 종사질, 노덕질, 연화질, 화원질, 삼강질 순으로 기록하고, 시주자를 모집하여 불사 비용을 마련한 옥청(沃淸) 스님과 필요한 물품을 총괄한 여총(呂摠) 스님을 마지막에 기록하였다. 시주질에 바탕, 채색, 후배, 복장, 공양, 보시 등에 시주한 인물 70명 이상을 기록하고, 연화질에 증명, 송주, 지향을 맡았던 인물을 기록하였다. 화원질에는 양공, 인권, 공양주, 도감, 부목, 내왕, 화주 등을 담당하였던 인물을 기록하였다. 감독은 진기(震基) 스님과 상심(詳心) 스님이 맡았고, 의식은 영안(潁眼) 스님과 옥겸(玉謙) 스님이 담당하였다. 제작은 화원을 모집하는 일까지 겸한 서기(瑞氣)를 비롯하여 조현(祖玄), 자인(自仁) 등 화원 13명이 담당하였다. 그런데 진기, 상심, 영안, 옥겸, 여총 스님은 당시 부석사에 전해오던 1684년 제작된 괘불도가 의례를 지내다 비바람에 훼손되자, 중수하며 기록한 화기에서도 같은 역할을 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고, 서기와 자인 스님은 중수, 조현 스님은 화원 모집을 담당하였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1745년 새 괘불도를 제작과 옛 괘불도 중수가 같은 인물 주도로 동시에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1684년 제작된 부석사 괘불도의 도상과 구도를 기본으로 노사나불을 추가한 오불회(五佛會) 형식이다. 석가모니불의 영산회를 중심으로 비로자나불, 약사불, 아미타불, 노사나불을 배치하여 가로축은 삼세불, 세로축은 삼신불로 구성하고, 70위가 넘는 존상을 빼곡하게 그렸다. 중앙의 석가모니불 바로 아래, 그려진 노사나불은 보살과 같은 모습으로 장엄하고, 설법하는 손 모양을 결하였다. 석가모니불은 편단우견 형식의 법의를 걸치고, 연화대좌 위에 앉아 항마촉지인의 손 모양을 결하였다. 머리는 낮은 육계에 정상계주, 중앙계주를 갖추었다.
참고문헌
『괘불조사보고서』Ⅲ, 국립문화재연구소, 2004.
『미술관 테마전 부석사 괘불』, 국립중앙박물관 미술부, 2007.
『한국의 사찰문화재』전국사찰문화재 일제조사 경상북도Ⅱ, 문화재청, (재)불교문화재연구소, 2008.
『문화재연감』, 문화재청, 2009.
송천, 이종수, 허상호, 김정민(2011), 『한국의 불화 화기집』, 도서출판 성보문화재연구원.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 포털〉 문화유산 검색, ‘보물 영주 부석사 오불회 괘불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