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표기 | 靈山掛佛 |
|---|---|
| 지정명칭 | 안국사 영산회괘불탱 |
| 제작시기 | 1728 |
| 중수시기 | 1792, 1809, 1939 |
| 수량 | 1 |
| 규격 | 1,108.0×731.0 |
| 재질 | 삼베 |
| 관련유물 | 복장낭(시대미상) 1점, 괘불함(조선시대) 1점, 괘불지주(1730) 5점, 괘불대(근대) 2점 |
| 소재지역 | 전북 무주군 |
무주 안국사 괘불도는 세로 1,108.0㎝, 가로 731.0㎝의 바탕에 영산회 의식에 초청되는 불보살을 그린 칠존도 형식의 야외 의식용 대형 불화이다.
하단 좌우 모서리 2곳의 붉은색 직사각형 안에 제작 시기, 봉안 장소, 왕실에 대한 축원, 시주질, 산중노덕질, 연화질과 회향게 등을 기록한 제작 화기를 남기고, 그 옆에 훗날 중수한 기록인 중수 화기를 덧붙여 기록하였다. 옹정 6년(1728) 적상산 안국사에 영산 괘불을 조성, 봉안한다고 밝혔다. 시주자는 대시주질과 시주질로 구분하여 열거하고, 궤에 시주한 인물은 따로 기재하였다. 연화질에 증사, 지전, 화원, 공양주, 부목, 내외찰임, 대공덕주, 소향경불, 삼강, 화상, 대장(代將), 전좌, 총섭 등을 담당하였던 스님 21명을 기록하였다. 감독은 종밀(宗密) 스님이 맡았고, 제작은 의겸(義謙), 혜찰(惠察), 의윤(義允), 민휘(敏輝), 천신(天信), 양찬(良贊), 화승 6명이 담당하였다. 중수는 1792년 4월, 1809년 4월, 1939년 5월, 세 차례 있었다.
괘불도와 관련된 기록으로 1928년 동아일보 기사와 당시에 작성하였던 기우축원문(祈雨祝願文), 송덕문(頌德文), 기도단임순서(祈禱担任順序) 등이 사진으로 전한다. 기사는 28년 전에 시행한 적이 있던 괘불 기우재를 8월 21일부터 무주 불교포교당에서 2주간 거행한다는 내용이다. 무주 불교포교당은 일제강점기 안국사 주지 이철허(李澈虛) 스님이 한풍루(寒風樓)를 고쳐, 사찰로 사용한 곳이기 때문에 안국사 괘불도가 사용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석가모니불을 독존 형식으로 부각하여 그리고, 아미타불, 다보불, 관음보살, 세지보살, 문수보살, 보현보살, 비천 2위를 좌우 대칭으로 배치한 구도이다. 각 존상 옆의 붉은색 직사각형 안에 이름을 금으로 기록한 방제(傍題)가 있어, 『오종범음집(五種梵音集)』의 영산회 의식 도상임을 알 수 있다. 석가모니불은 뒤에 광배를 갖추고 변형된 편단우견 형식의 법의를 걸친 채, 항마촉지인의 손 모양을 한 모습이다.
괘불도와 관련된 유물로 괘불함 1점, 괘불지주 5점, 괘불대 2점, 복장낭 1점이 남아 있다. 괘불함은 조선시대 제작된 길이 825.0㎝, 높이 45.0㎝의 상자형 궤이다. 괘불지주에는 명문이 남아 있어, 1730년에 제작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높이는 195.0㎝~225.0㎝이며, 본래 수몰된 안국사 터에 있었는데 1991년 극락전 앞으로 옮겨 복원하였다. 괘불대는 근대에 제작된 길이 1,150.0㎝~1,155.0㎝의 나무 장대이다. 복장낭은 종이로 만든 것으로, 내부의 복장물은 모두 결실되었다.
참고문헌
『동산문화재 지정조사보고서(96~97 지정편)』, 문화재관리국, 1998.
『괘불조사보고서』Ⅱ, 국립문화재연구소, 2000.
송천, 이종수, 허상호, 김정민(2011), 『한국의 불화 화기집』, 도서출판 성보문화재연구원.
『대형불화 정밀조사 보고서』47 보물 안국사 영산회 괘불탱, 문화재청, (사)성보문화재연구원, 2022.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 포털〉 문화유산 검색, ‘보물 안국사 영산회 괘불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