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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미황사 괘불도

한자표기 掛佛幀
지정명칭 미황사 괘불탱
제작시기 1727
중수시기 1993
수량 1
규격 1,190.0×484.2
재질 삼베
관련유물 괘불함(1642) 1점, 괘불지주(조선후기) 4기
소재지역 전남 해남군
해남 미황사 괘불도는 세로 1,190.0㎝, 가로 484.2㎝의 바탕에 석가모니불, 타방불, 용왕, 용녀 등을 그린 독존도 형식의 야외 의식용 대형 불화이다. 하단 2곳의 붉은색 직사각형 안에 제작 시기, 봉안 장소, 시주와 제작에 참여한 인물 등을 기록한 화기를 남겼다. 옹정 5년 정미(1727) 9월 괘불탱을 조성하여 영암군 남쪽 고개에 있는 미황사에 봉안한다고 밝히고, 불화 바탕과 공양에 시주한 인물 38명을 기록하였다. 연화질에 증사, 지전, 화사, 화주 등 제작과 의식에 직접 역할을 맡았던 스님 28명을 기록하고, 본사 노덕질에는 보주, 지사, 삼강, 주지 등 사찰 운영을 맡았던 스님 6명을 기록하였다. 감독은 옥균(玉均) 스님이 맡았고, 제작은 탁행(琢行), 설심(雪心), 희심(喜心), 임한(任閑), 민휘(敏輝), 취상(就祥) 등 화승 7명이 담당하였다. 괘불도와 관련된 기록으로 『임하록(林下錄)』에 실린「천변불사소(川邊佛事䟽)」가 전한다. 1775년 겨울, 수륙재 때 연담 유일(蓮潭有一) 스님이 지어 올린 글이다. 그리고 1995년 남도불교연구회에서 채록한 기우재에 대한 증언 자료가 있다. 기우재를 지내던 중 비가 와서 괘불이 비에 젖었고, 그 후로도 비가 오지 않으면 괘불을 내놓고 기우재를 지냈는데, 새로 만든 것을 걸었다고 한다. 현재 괘불도에 비 맞은 흔적과 비슷한 채색 번짐 현상이 관찰되지만, 한편으로 1989년 비에 손상되었던 것을 1993년에 보수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 같은 괘불도인지 알 수 없다. 석가모니불을 크게 부각하여 독존 형식으로 그리고, 상단에 타방불 6위, 하단에 용왕, 용녀를 좌우 대칭으로 배치한 구도이다. 석가모니불은 변형된 편단우견 형식의 법의를 걸치고, 항마촉지인의 손 모양을 취하였다. 머리의 나발은 윤곽으로만 묘사하고, 높이 솟아오른 육계에 중앙계주와 정상계주를 표현하였다. 괘불도와 관련된 유물로 괘불함 1점과 괘불지주 5점이 남아 있다. 괘불함은 길이 125.0㎝, 높이 33.5㎝의 크기이며, 덮개 안쪽에 1642년 5월 괘불도 등 불화 10점과 탁의 1점을 조성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1727년 괘불도가 제작되기 85년 전의 기록이어서, 이전에도 괘불도가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괘불지주는 조선후기에 제작된 높이 125.0㎝~214.0㎝의 돌기둥 형태로, 4점은 대웅보전 앞에 설치되어 있고 1점은 대웅보전 오른쪽 빈터에 놓여 있다. 참고문헌 『괘불조사보고서』Ⅱ, 국립문화재연구소, 2000. 『2001 문화재위원회 회의록』[상권(제1분과·제2분과)], 문화재청, 2002. 송천, 이종수, 허상호, 김정민(2011), 『한국의 불화 화기집』, 도서출판 성보문화재연구원. 『대형불화 정밀조사 보고서』13 보물 제1342호 미황사 괘불탱, 문화재청, (사)성보문화재연구원, 2018.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 포털〉 문화유산 검색, ‘보물 미황사 괘불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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