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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봉정사 괘불도

한자표기 靈山會
지정명칭 안동 봉정사 영산회괘불도
제작시기 1710
중수시기 2011
수량 1
규격 821.6×620.1
재질 비단
관련유물 괘불함(조선후기) 1점, 괘불지주(조선후기) 2점
소재지역 경북 안동시
안동 봉정사 괘불도는 세로 821.6㎝, 가로 620.1㎝의 바탕에 석가모니불의 영취산 설법 모임을 그린 군도 형식의 야외 의식용 대형 불화이다. 하단 가장자리 2곳에 제작 시기, 봉안 장소, 시주와 제작에 참여한 인물 등을 기록한 화기를 남겼다. 강희 49년 경인(1710) 4월 23일 봉정사 영산회 한 부라고 기록한 뒤, 시주질, 본사시주질, 산중노덕질, 연화질을 기록하여 1710년 4월 봉정사의 영산회 그림 제작과 관련된 기록임을 알 수 있다. 시주질에 기록된 시주 항목은 바탕, 후배, 안료, 공양, 보시, 천, 황금, 후령통 등이고, 시주자는 약 93명이다. 본사시주질에는 이 절의 스님 시주자를 기록하고, 연화질에는 증명, 화원, 별좌, 공양주, 부목, 대화사 등 제작에 직접 역할을 맡았던 인물 19명을 기록하였다. 감독은 일념(一念) 스님이 맡았고, 제작은 도문(道文), 설잠(雪岑), 승순(勝淳), 계순(戒淳), 해영(海渶), 종열(宗悅), 성은(聖訔), 화승 7명이 담당하였다. 화원 가운데 제일 앞에 이름을 올린 수화원 도문은 봉정사 괘불도 조성 1년 전인 1709년에 예천 용문사 천불도와 팔상도를 제작하였는데, 이때도 감독은 일념 스님이 맡았고, 설잠, 계순, 해영 스님은 도문 스님과 함께 화원으로 참여하였다. 화기 끝에는 회향 게송을 적었다.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팔대보살, 십대제자를 좌우 대칭으로 배치한 구도이다. 석가모니불은 양 어깨를 가린 법의를 걸치고, 연꽃 위에 올라 선 모습이다. 뒤에는 머리 광배, 몸 광배를 나타냈다. 오른손은 가슴까지 들어 올리고, 왼손은 배 앞에 두었다. 양 볼과 눈두덩이에는 홍조를 묘사하였다. 머리의 나발 모양은 흰색 윤곽선으로 처리하고, 육계와 중앙계주를 표현하였다. 양옆에 있는 보살들은 손에 든 물건만 다를 뿐 거의 비슷한 모습으로 그렸다. 괘불도와 관련된 유물로 조선후기에 제작된 괘불함 1점, 괘불지주 2점이 남아 있다. 괘불함은 길이 671.0㎝, 높이 32.4㎝의 상자형 궤이다. 괘불지주는 대웅전 앞에 위치하고 있는데 모두 파손이 심한 상태이다. 지주의 높이는 107.0㎝~128.0㎝이고, 두 지주 사이의 거리는 약 464.0㎝ 정도이다. 참고문헌 『괘불조사보고서』Ⅲ, 국립문화재연구소, 2004. 『한국의 사찰문화재』전국사찰문화재 일제조사 경상북도Ⅱ, 문화재청, (재)불교문화재연구소, 2008. 송천, 이종수, 허상호, 김정민(2011), 『한국의 불화 화기집』, 도서출판 성보문화재연구원. 『2010 국보 보물 지정보고서』, 문화재청, 2013. 『대형불화 정밀조사 보고서』28 보물 제1642호 안동 봉정사 영산회 괘불도, 문화재청, (사)성보문화재연구원, 2020.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 포털〉 문화유산 검색, ‘보물 안동 봉정사 영산회 괘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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