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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 수도사 괘불도

한자표기 世尊掛佛
지정명칭 영천 수도사 노사나불괘불탱
제작시기 1704
중수시기 1822, 2001
수량 1
규격 980.0×478.0
재질 삼베
관련유물 괘불함(조선시대) 1점
소재지역 경북 영천시
영천 수도사 괘불도는 세로 980.0㎝, 가로 478.0㎝의 바탕에 연꽃가지를 들고 설법하는 노사나불을 그린 독존도 형식의 야외 의식용 대형 불화이다. 하단에 제작과 중수를 기록한 화기를 남겼다. 경상도 신령 서쪽 고개 팔공산 수도사의 세존괘불이라고 기록한 뒤, 시주질, 본사질, 연화질을 기록하였다. 신령은 지금의 영천군 신령면에 해당한다. 시주질에 바탕, 공양, 보시, 괘불 불량답 등에 시주한 인물 62명을 기록하고, 연화질에는 증명, 지전, 화원, 목수, 공양주, 내왕, 건조, 도감, 도대별좌, 인권 등을 담당한 인물 17명을 기록하였다. 감독은 신견(信堅) 스님, 의식은 인오(印悟) 스님이 맡았다. 제작은 화승인 인문(印文), 초경(草敬), 응옥(應玉), 경연(敬衍), 혜명(惠明) 5명이 담당하였다. 제작에 참여한 화원을 상(上)화원, 부(副)화원, 화(畵) 세 가지 이름으로 세분하여 기록하였다. 목수로 취안(就安)과 전만성(全萬成) 2명을 기록하였는데, 이들이 괘불함을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 각 도와 각 관청, 각 마을, 각 사찰에서 기꺼이 도움을 주거나 시주한 단월, 비구, 거사 등을 각각 축원하고, 강희 43년 갑신(1704) 4월 조성이라고 기록하였다. 중수 기록은 종이 2매에 먹으로 기록한 뒤, 본래 화기 바로 옆에 붙여 놓았다. 대시주질에 중수를 위해 시주한 34명을 기록하고 각 면, 각 리에서 크고 작은 시주 각각에 기꺼이 인연을 맺어 동참한 시주 등이라고 적은 뒤, 도광 2년 임오(1822) 6월 개보(改補) 조성하였다고 기록하였다. 그리고 연화질, 본암질을 기록하였다. 중수에는 지연(旨演)을 비롯한 화사 4명이 참여하였다. 본존 위에 ‘원만 보신 노사나불(圓滿報身盧舍那佛)’이라고 기록하여, 본존이 노사나불임을 분명히 밝혔다. 노사나불은 양 어깨를 가린 변형된 편단우견 형식의 대의를 걸치고, 보관과 장신구로 장엄한 채 연꽃가지를 들고 선 모습이다. 보관 끝 부분에는 화불 7위가 봉안되었고, 관 사이로 보이는 머리카락은 어깨선을 따라 허리 아래까지 늘어뜨렸다. 뒤에는 원형의 머리 광배와 방형에 가까운 몸 광배, 구불구불 뻗어나가는 서기(瑞氣)를 표현하였다. 괘불도와 관련된 유물로 괘불함 1점이 남아 있다. 조선시대 제작된 길이 541.5㎝, 높이 33.0㎝의 목제 상자형 궤이다. 참고문헌 『동산문화재 지정보고서(96~97 지정편)』, 문화재관리국, 1998. 송천, 이종수, 허상호, 김정민(2011), 『한국의 불화 화기집』, 도서출판 성보문화재연구원. 『대형불화 정밀조사 보고서』6 보물 제1271호 수도사 노사나불 괘불탱, 문화재청, (사)성보문화재연구원, 2017.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 포털〉 문화유산 검색, ‘보물 수도사 노사나불 괘불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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