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표기 | 靈山會圖 |
|---|---|
| 지정명칭 | 성주 선석사 영산회괘불탱 |
| 제작시기 | 1702 |
| 중수시기 | 1870, 2007 |
| 수량 | 1 |
| 규격 | 765.4×487.6 |
| 재질 | 비단 |
| 관련유물 | 괘불함(1706) 1점 |
| 소재지역 | 경북 성주군 |
성주 선석사 괘불도는 세로 765.4㎝, 가로 487.6㎝의 바탕에 석가모니불의 영산회를 그린 칠존도 형식의 야외 의식용 대형 불화이다.
하단 3곳에 왕실에 대한 축원, 제작 시기, 봉안 장소, 시주와 제작에 참여한 인물 등을 기록한 화기를 남겼다. 당시 주상이었던 숙종과 비, 세자의 장수를 축원하고, 강희 41년 임오(1702) 4월 영산회도 한 부를 경상좌도 성산(성주의 옛 이름) 북쪽에 있는 서진산 선석사에 봉안한다고 밝힌 뒤, 시주질과 연화질을 기록하였다. 시주질에 바탕, 채색, 황금, 괘불 불량답, 공양, 메주, 소금, 보시, 등촉, 후배 등의 항목에 시주한 인물을 기록하였다. 시주에는 100명 이상이 참여하였다. 연화질에는 증명, 지향, 화원, 공양주, 조연, 별좌, 화주 등 제작과 의식에 직접 참여한 인물을 기록하였다. 감독은 밀영(密瑛), 의식은 사언(思彦) 스님이 맡았다. 제작은 화승인 탁휘(卓輝), 법해(法海), 설잠(雪岑), 성징(性澄)이 담당하였다. 왼쪽 테두리에서 ‘구년경오(九年庚午)’라는 흰색으로 쓴 글자가 발견되었는데, 1870년, 동치(同治) 9년인 경오(庚午)년에 보수를 하고 남긴 것으로 보인다.
연꽃가지를 든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양옆에 문수보살, 보현보살을 배치하고, 그 위에 제자 4위를 좌우 대칭으로 배치한 구도이다. 석가모니불, 문수보살, 보현보살 구성의 삼존불은 연꽃 위에 올라 정면을 바라보고 선 모습이다. 석가모니불은 양쪽 어깨를 가린 법의를 걸쳤다. 머리는 나발을 윤곽선으로 묘사하고, 뾰족하게 솟은 육계에 정상계주와 중앙계주를 표현하였다. 문수보살, 보현보살은 거의 비슷한 모습으로 묘사하였다.
괘불도와 관련된 유물로 괘불함 1점과 진언 7점이 남아 있다. 괘불함은 길이 521.8㎝, 높이 30.7㎝의 상자형 궤이다. 덮개 안쪽에 1706년 4월 선석사 괘불궤 조성이라고 기록하고, 제작에 참여한 양공, 야철 편수, 별좌, 공양주가 기록되어 있다. 진언은 2007년 괘불도 보존처리 과정에서 발견되었는데, 뒷면 중앙에 3점, 네 모퉁이에 4점이 부착되어 있었다. 보존 처리 후, 새로 만든 괘불함에 넣어 보존하고 있다.
참고문헌
『전국 사찰소장 불화 조사보고』제5집 동화사 본말사 불화 조사보고, (사)성보문화재연구원, 2001.
『괘불조사보고서』Ⅲ, 국립문화재연구소, 2004.
『2009 국보·보물 지정보고서』, 문화재청, 2010.
송천, 이종수, 허상호, 김정민(2011), 『한국의 불화 화기집』, 도서출판 성보문화재연구원.
『대형불화 정밀조사 보고서』22 보물 제1608호 선석사 영산회 괘불탱, 문화재청, (사)성보문화재연구원, 2019.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 포털〉 문화유산 검색, ‘보물 성주 선석사 영산회 괘불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