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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 정수사 괘불도

제작시기 1708년 이전
중수시기 1992, 2011
수량 1
규격 776.0×429.0
재질 삼베
관련유물 괘불지주(1708) 2점
소재지역 전남 강진군
강진 정수사 괘불도는 연화대좌에 앉은 부처님과 양 옆에 보살이 서 있는 모습을 그린 삼존도 형식의 야외 의식용 대형 불화이다. 그림의 상당 부분이 결실되어 도상(圖像)의 일부만 남아 있었다. 남아 있는 부분의 크기는 세로 396.0㎝, 가로 320.0㎝이다. 일반적으로 그림 아래쪽에 제작 시기나 봉안 장소, 그림을 그린 화가 등을 기록한 화기를 남기지만, 화기 부분이 없어진 상태이다. 해남 백화사에 필사본으로 전해진 『호남좌도 금릉현 천태산 정수사 여지승람(湖南左道金陵縣天台山淨水寺輿地勝覽)』에 의하면, 정수사의 원래 이름은 쌍계사(雙溪寺)였는데 1622년에서 1722년 사이에 정수사로 이름을 고쳤다고 한다. 현재 정수사 대웅전 앞에 남아 있는 괘불지주에 1708년에 만들어졌다는 명문이 있어, 적어도 1708년 전에는 괘불도가 제작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본존의 허리 윗부분과 오른쪽 협시보살의 무릎 부분까지만 남아 있었기 때문에 불보살의 얼굴이나 손모양 등 두 존상의 상반신 부분은 확인할 수 있다. 남아 있는 부분으로 볼 때, 본존은 앉은 자세이고 보살은 서있는 자세이며, 모두 정면을 바라보는 도상이다. 부처님은 대의에 복견의(覆肩衣)가 더해진 법의를 걸쳤고, 뒤에 머리 광배, 몸 광배를 나타냈다. 왼손은 배 앞에 두고, 오른손은 어깨 높이까지 들어 올려 넷째 손가락을 엄지와 맞닿게 하였다. 귀는 크고 두툼하게 묘사하였다. 머리는 나발을 윤곽선으로 묘사하고, 위로 솟은 육계에 중앙계주, 정상계주를 모두 표현하였다. 보살은 머리에 보관을 쓰고 두 손으로 여의(如意)을 받쳐 들었다. 보살의 두광은 어두운 색으로 투명하게 처리하였다. 상단의 여백은 하늘로 연출하고, 구름과 물결 모양 서기(瑞氣)를 그려 넣었다. 괘불도의 수리는 1992년과 2011년 결실 부분을 복원하는 방식으로 2회 이루어졌다. 1992년 수리로 화면 크기 세로 684.0㎝, 가로 419.0㎝, 전체 크기 세로 776.0㎝, 가로 429.0㎝가 되었고, 2011년 수리 후 전체 크기 세로 710.0㎝, 가로 450.0㎝의 현재 모습이 되었다. 참고문헌 이영숙(2003), 「강진 정수사 괘불의 제작시기에 대한 고찰」, 『문화사학』19호, 한국문화사학회. 『한국의 불화』31 대흥사 본말사편, (사)성보문화재연구원, 2004. 김범수(2012), 「강진 정수사 괘불탱의 해체수리와 유실부분 고색복원모사기」, 『원불교 사상과 종교문화』54집,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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