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정명칭 | 용봉사 영산회괘불탱 |
|---|---|
| 제작시기 | 1690 |
| 중수시기 | 1725, 1987, 2015 |
| 수량 | 1 |
| 규격 | 636.4×575.8 |
| 재질 | 삼베 |
| 관련유물 | 괘불함(조선후기) 1점 |
| 소재지역 | 충남 홍성군 |
홍성 용봉사 괘불도는 세로 636.4㎝, 가로 575.8㎝의 바탕에 석가모니불이 영취산에서 설법하는 장면을 그린 군도 형식의 야외 의식용 대형 불화이다.
하단 3곳에 1690년의 제작과 1725년, 1987년의 중수를 기록한 화기를 남겼다. 제작 당시 남긴 화기는 붉은색 직사각형 2곳에 기록되어 있다. 주상전하, 왕비전하, 세자저하의 장수에 대한 축원을 금니로 적고, 그 아래에 시주질과 본사질을 나란히 기록하였다. 시주질에 바탕, 공양, 후배지, 둥근 거울 등의 항목에 시주한 102명을 기록하고, 본사질에는 산중대덕 성응(性應)과 명언(明彦)을 비롯한 스님 70명을 기록하였다. 그리고 증사, 화사, 행자, 공양주, 부목, 내왕, 별좌, 화주, 지전, 수승, 종두, 지사 등 제작과 의식에 직접 참여한 스님 19명을 기록하였다. 감독은 택정(澤淨) 스님이 맡고, 제작은 해숙(海淑) 등 7명의 화사가 담당하였다. 화기 끝에는 태청 강희 29년 경오(1690) 5월 팔봉산 용봉사에 옮겨 전한다고 기록하였다. 중수 기록은 붉은색 직사각형 바깥쪽 흰 바탕에 남겼다. 1725년 3월 신선재 부부를 포함한 부부 일곱 쌍이 시주하여, 설호(雪浩) 스님이 감독하고 원각(圓覺) 스님이 중수하였다. 1987년에는 원담(圓潭) 스님이 감독하고, 화공 이영호가 중수하였다. 괘불도 뒷면에는 2015년 보존처리 기록인 ‘수리기’를 붙여놓았다.
연화대좌 위에 결가부좌한 석가모니불을 팔대보살, 십대제자, 범천, 제석천, 사천왕 등이 에워싸고 있는 구도이다. 석가모니불은 오른쪽 어깨를 살짝 가린 변형된 편단우견 형식의 법의를 걸치고, 오른손은 무릎에 왼손은 배 앞에 두었다. 머리는 낮은 육계에 윤곽선으로 나발을 묘사하고, 중앙계주와 정상계주를 표현하였다.
괘불도와 관련된 유물로 조선후기에 만들어진 괘불함 1점이 남아 있다. 괘불함은 길이 632.8㎝, 높이 35.3㎝의 목제 상자형 궤이다.
참고문헌
『괘불조사보고서』Ⅰ, 국립문화재연구소, 1992.
『동산문화재 지정보고서(96~97 지정편)』, 문화재관리국, 1998.
송천, 이종수, 허상호, 김정민(2011), 『한국의 불화 화기집』, 도서출판 성보문화재연구원.
『대형불화 정밀조사 보고서』19 보물 제1262호 용봉사 영산회 괘불탱, 문화재청, (사)성보문화재연구원, 2018.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 포털〉 문화유산 검색, ‘보물 용봉사 영산회 괘불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