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표기 | 靈山掛佛 |
|---|---|
| 지정명칭 | 북장사 영산회괘불탱 |
| 제작시기 | 1688 |
| 중수시기 | 1970, 1993 |
| 수량 | 1 |
| 규격 | 1,330.0×811.6 |
| 재질 | 삼베 |
| 소재지역 | 경북 상주시 |
상주 북장사 괘불도는 세로 1,330.0㎝, 가로 811.6㎝의 바탕에 석가모니불의 영취산 설법 모임 장면을 그린 군도 형식의 야외 의식용 대형 불화이다.
하단 흰 바탕 2곳에 먹으로 제작 시기, 봉안 장소, 시주 항목, 시주와 제작에 참여한 인물 등을 기록한 화기를 남겼다. 강희 27년 무진(1688) 7월 영산괘불 1점을 조성하고 영남 상산(상주의 옛 이름) 서쪽에 있는 천주산 북장사에 봉안한다고 밝힌 뒤, 바탕, 공양, 보시, 채색, 불화 거는 고리 등에 시주한 인물 90여명을 기록하고, 연화질에 증명, 지전, 화원, 대화사 등 제작과 의식에 직접 역할을 맡았던 스님 15명을 기록하였다. 감독은 덕순(德淳) 스님이 맡았고, 제작은 학능(學能), 탁휘(卓輝) 등 화승 7명이 담당하였다. 사내질에는 노덕과 가선, 통정 같은 품계를 받은 스님, 장무, 삼보, 수승 등을 담당한 스님 총 61명을 기록하였다.
북장사 괘불도는 파랑새가 부리에 붓을 물고 그렸다는 이야기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권상로의 『조선사찰전서』(1963)에 수록된 사례가 유일하다. 이 책「북장사조」에 따르면, 상주읍지인 『상산지(商山誌)』에 파랑새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었다고 하지만, 영조 때부터 1928년까지 간행된 『상산지』 6종에서 관련 내용이 확인되지 않는다. 한편, 1969년 간행된 『상주 지구 고적조사보고서』에는 1960년 음력 7월 1일에 상주읍 후천 모래사장에서 괘불을 걸고 기우재를 지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영취산 설법회에 강림한 28위의 존상을 좌우 대칭으로 배치한 구도이다. 석가모니불 무릎 아래쪽에 문수보살, 보현보살, 사천왕을 배치하고, 광배 옆에 보살 6위, 범천, 제석천, 금강 4위, 제자 10위를 배치하였다. 석가모니불은 오른손은 아래로 내리고 왼손은 배 앞에 두었는데, 오른손이 보현보살의 머리와 두광에 가려졌다. 머리는 솟아오른 육계에 중앙계주, 정상계주를 표현하고, 흰색 윤곽선으로 나발을 묘사하였다.
참고문헌
『동산문화재 지정보고서(96~97 지정편)』, 문화재관리국, 1998.
『괘불조사보고서』Ⅲ, 국립문화재연구소, 2004.
『한국의 사찰문화재』전국사찰문화재 일제조사 경상북도Ⅱ, 문화재청, (재)불교문화재연구소, 2008.
송천, 이종수, 허상호, 김정민(2011), 『한국의 불화 화기집』, 도서출판 성보문화재연구원.
『2016 테마전 소원을 들어주는 부처: 상주 북장사 괘불』, 국립중앙박물관, 2016.ㄴ
『보물 고려불화·괘불도』, 문화재청, 2020.
『대형불화 정밀조사 보고서』4 보물 제1278호 북장사 영산회 괘불탱, 문화재청, (사)성보문화재연구원, 2016.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 포털〉 문화유산 검색, ‘보물 북장사 영산회 괘불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