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표기 | 掛佛幀 |
|---|---|
| 지정명칭 | 율곡사 괘불탱 |
| 제작시기 | 1684 |
| 중수시기 | 1729, 2009 |
| 수량 | 1 |
| 규격 | 920.0×474.8 |
| 재질 | 비단 |
| 관련유물 | 괘불함(조선시대) 1점, 괘불지주(조선후기) 4점, 「단성 율곡사 괘불탱기」『풍계집』 |
| 소재지역 | 경남 산청군 |
산청 율곡사 괘불도는 세로 920.0㎝, 가로 474.8㎝의 바탕에 연꽃가지를 들고 설법하는 석가모니불을 그린 독존도 형식의 야외 의식용 대형 불화이다.
하단 3곳에 왕실에 대한 축원, 제작과 중수를 기록한 화기가 남아 있다. 수리 흔적이나 화기의 글씨체 등으로 보아, 괘불도 중수를 기록할 때 제작 기록을 옮겨 적은 것으로 보인다. 주상전하 숙종과 비, 세자의 장수를 빌고, 시주질에 괘불, 공양, 보시, 메주, 소금, 후배 항목에 시주한 인물 56명을 기록하였다. 갑동원 시주질을 별도로 마련하여 스님 시주자 15명을 기록하였는데, 갑동원은 수행자들이 재원 마련을 위해 결성한 사찰계를 말한다. 산중대덕질에 대덕과 서기를 담당하였던 스님 4명을 기록하고, 연화질에는 증사, 지전, 화원 등 제작과 의식에 직접 역할을 맡았던 스님 9명을 기록하였다. 감독은 수화(守和) 스님, 의식은 승관(勝寬) 스님이 책임을 맡았다. 제작은 법림(法琳), 숙연(淑連), 자명(自明) 스님이 담당하였다. 강희 23년 갑자(1684) 4월 단성 북쪽 고개 지리산 율곡사 괘불탱을 봉안한다고 기록하였다. 그리고 조금 떨어뜨려 중수 시주질이라고 적고, 공양, 후배 겸 등촉, 후배 항목에 시주한 인물 18명, 중수를 감독한 스님 1명, 화승 3명을 기록하였다. 중수 기록 끝에는 옹정 7년 기유(1729) 4월 중수라고 기록하였다. 괘불도 뒷면에는 복장 의식과 관련된 목판본 진언을 붙여놓았다.
괘불도와 관련된 기록으로 풍계 명찰(楓溪明察) 스님이 지은「단성 율곡사 괘불탱기(丹城栗谷寺掛佛幀記)」가 『풍계집(楓溪集)』에 수록되어 있다. 기문을 통해 그려진 존상의 이름이 석가모니불이며, 제작을 위해 굉식(宏湜) 스님이 1682년부터 1684년까지 시주를 모았던 것을 알 수 있다.
홍련과 백련이 핀 꽃다발을 들고 연화 위에 올라선 석가모니불은 다섯 부처가 봉안된 보관과 장신구로 장엄한 모습이다. 연꽃을 들고 장엄한 모습으로 설법하는 부처님 도상은 1627년 무량사 괘불도로 제작된 이래, 18세기 유행한 도상이다. 보살처럼 장엄하였지만, 옷은 양쪽 어깨를 가린 대의, 승각기, 군의, 복견의 등 부처님의 격식에 맞춰 입었다.
괘불도와 관련된 유물로 조선시대 제작된 괘불함 1점, 괘불지주 4점이 남아 있다. 괘불함은 길이 526.4㎝, 높이 37.7㎝의 상자형 궤이다. 괘불지주는 현재 대웅전 앞에 설치되어 있다.
참고문헌
『괘불조사보고서』Ⅲ, 국립문화재연구소, 2004.
『한국의 사찰문화재』전국사찰문화재 일제조사 경상남도Ⅰ, 문화재청, (재)불교문화재연구소, 2009.
송천, 이종수, 허상호, 김정민(2011), 『한국의 불화 화기집』, 도서출판 성보문화재연구원.
『보물 고려불화·괘불도』, 문화재청, 2020.
『대형불화 정밀조사 보고서』42 보물 율곡사 괘불탱, 문화재청, (사)성보문화재연구원, 2022.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 포털〉 문화유산 검색, ‘보물 율곡사 괘불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