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작시기 | 1684 |
|---|---|
| 중수시기 | 1745 |
| 수량 | 1 |
| 규격 | 화면 913.3×599.9 |
| 재질 | 비단 |
| 관련유물 | 괘불지주(시대미상) 2점 |
| 소재지역 | 서울 용산구 |
영주 부석사 괘불도는 세로 913.3㎝, 가로 599.9㎝의 화면에 석가모니불, 비로자나불, 약사불, 아미타불 네 부처님의 설법회 장면을 그린 군도 형식의 야외 의식용 대형 불화이다. 화기(畵記)에 1745년 중수 후 청풍 신륵사로 옮겨 봉안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하단 2곳, 중앙의 붉은색 직사각형과 그 아래 화면 테두리 흰 바탕에 괘불도 제작과 중수 기록인 화기가 남아 있다. 붉은색 직사각형 안에는 숙종과 비, 세자의 장수를 비는 축원을 금으로 기록하였다. 흰 바탕에 쓴 기록은 먹으로 썼고 손상되어 일부만 판독되지만, 강희 23년 갑자(1684) 7월 부석사 괘불도 1점 및 삼존불상을 조성한 기록이라고 적은 뒤 시주질, 본사질, 괘불화□질(掛佛畵□秩), 불상□□질(佛像□□秩), 연화질 등을 기록한 것이 확인된다. 괘불도와 삼존불상 조성에 동참한 사람은 160명 이상이고, 시주 항목은 괘불, 바탕, 불상, 공양, 영락, 후배, 보시, 등촉, 꿀, 된장, 주홍, 소금 등이다. 감독은 대종사 상희(尙熙) 스님이 맡았고, 제작은 화승 3명이 담당하였다. 끝에 회향 게송을 적고, 스님 2명과 부부 세 쌍을 기록하였다. 이 기록 왼쪽에 건륭 10년 을축(1745) 4월 중수하고 충청도 청풍 월악산 신륵사에 옮겨 봉안한다고 적고, 불화 뒷면의 배접지를 새로 하는데 시주한 인물과 중수한 화승 등을 덧붙여 기록하였다. 중수를 감독한 스님은 진기(震基), 상심(詳心)이고, 참여한 화승은 서기(瑞氣), 자인(自仁)이다. 중수 화기에 기록된 인물은 1745년 부석사에서 새로 조성하는 괘불도 화기에 기록된 인물과 상당수 일치하여, 동일한 인물 주도로 중수와 새 괘불도 제작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석가모니불, 비로자나불, 약사불, 아미타불의 설법회에 등장하는 70위가 넘는 존상들을 화면에 질서정연하게 배치하였다. 중앙에 석가모니불의 영산회를 가장 비중 있게 배치하고, 상단에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삼불회를 배치하였다. 각 불회 장면 사이에 구름을 그려 넣어 구획을 나누고, 공간감을 주었다. 영산회는 연화대좌 위에 결가부좌한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설법을 듣기 위해 모여든 팔대보살, 십대제자, 벽지불, 범천, 제석천, 사천왕 등으로 구성되었다.
괘불도와 관련된 유물로 괘불지주 2점이 안양루 계단 아래에 남아 있다. 괘불지주의 위치로 보아, 안양루 아래쪽 마당에 괘불도를 걸고 불교 의식을 열었던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미술관 테마전 부석사 괘불』, 국립중앙박물관, 2007.
송천, 이종수, 허상호, 김정민(2011), 『한국의 불화 화기집』, 도서출판 성보문화재연구원.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 소장품 검색, ‘부석사 괘불’.
국립중앙박물관, 〈e뮤지엄〉 전국박물관 소장품 검색, ‘부석사 괘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