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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 청룡사 괘불도

한자표기 掛佛幀
지정명칭 청룡사 영산회괘불탱
제작시기 1658
중수시기 2002
수량 1
규격 919.5×649.5
재질 삼베, 비단
관련유물 괘불함(조선후기) 1점, 괘불지주(조선후기) 2점, 괘불대(조선후기) 2점
소재지역 경기 안성시
안성 청룡사 괘불도는 세로 919.5㎝, 가로 649.5㎝의 바탕에 석가모니불의 영취산 설법회 장면을 그린 군도 형식의 야외 의식용 대형 불화이다. 하단 3곳에 제작 시기, 봉안 장소, 제작과 시주에 참여한 인물 등을 기록한 화기를 남겼다. 중앙의 붉은색 직사각형 안에 순치 15년 무술(1658) 5월 조성하였다고 밝히고, 주상전하, 왕대비, 왕비, 세자에 대한 축원, 성주 김홍석 부부의 향대 시주를 기록하였다. 끝에 안성 남면 서운산 청룡사 괘불탱이라고 기록하여, 안성 청룡사에 봉안된 괘불도임을 알 수 있다. 그림 아래 흰 바탕에 전·현 주지 경순(敬淳), 법열(法悅) 스님과 삼강(三綱)을 맡았던 스님 11명을 기록하였다. 그리고 탱 대시주(幀大施主), 공양 대시주(供養大施主), 보시 대시주(布施大施主), 황금 대시주(黃金大施主) 등을 적고, 시주자 이름을 열거하였다. 시주에 총 15명이 참여하였다.연화질이라고 적은 뒤, 증사, 화원, 공양주, 대공덕주 등 제작에 직접 소임을 맡았던 인물을 기록하였다. 감독은 각흥(覺興) 스님이 맡았고, 제작은 화원 사과 박란(司果朴蘭)과 명옥(明玉), 응상(應尙) 등 스님 4명이 담당하였다. 사과는 5위(五衛)의 정6품의 관직으로, 박란은 도화서 소속 화원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명옥은 1653년 진천 영수사 괘불도를 제작할 때는 수화승이었고, 1670년 공주 갑사의 경전 간행 불사 때는 각수(刻手)로 참여하였다. 응상은 1657년에는 세종 비암사 괘불도 제작에 참여하였다.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보살 6위, 사천왕, 범천, 제석천, 십대제자 등 설법을 듣기 위해 모여든 청문중으로 구성되었다. 중앙의 석가모니불은 복견의(覆肩衣)를 더한 변형된 편단우견 형식의 법의를 걸치고, 탁자 위에 놓인 연화대좌에 결가부좌한 모습이다. 한 손은 무릎 위에 두고, 다른 한 손은 설법인의 손 모양처럼 어깨까지 들어 올렸다. 뒤에는 연잎형 머리 광배와 몸 광배를 표현하였다. 괘불도와 관련된 유물로 조선후기에 제작된 괘불함 1점, 괘불지주 2점, 괘불대 2점이 남아 있다. 괘불함은 길이 691.4㎝, 높이 38.0㎝의 목제 상자형 궤이고, 괘불지주는 높이 144.0㎝~155.0㎝의 석제지주로 대웅전 앞에 설치되어 있다. 괘불대는 높이 953.0㎝~954.0㎝의 장대이다. 참고문헌 『괘불조사보고서』Ⅱ, 국립문화재연구소, 2000. 『동산문화재 지정보고서(96~97 지정편)』, 문화재관리국, 1998. 송천, 이종수, 허상호, 김정민(2011), 『한국의 불화 화기집』, 도서출판 성보문화재연구원. 『서화관 테마전 깨달음에 대한 설법: 서운산 청룡사 괘불 보물 1257호』, 국립중앙박물관, 2015. 『대형불화 정밀조사 보고서』38 보물 제1257호 청룡사 영산회 괘불탱, 문화재청, (사)성보문화재연구원, 2021.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 포털〉 문화유산 검색, ‘보물 청룡사 영산회 괘불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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