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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비암사 괘불도

한자표기 靈山會掛佛幀
지정명칭 전의 비암사 영산회괘불탱화
제작시기 1657
수량 1
규격 900.0×500.0
재질 삼베
소재지역 세종 전의면
세종 비암사 괘불도는 세로 900.0㎝, 가로 500.0㎝의 바탕에 석가모니불의 영취산 설법 장면을 그린 군도 형식의 야외 의식용 대형 불화이다. 하단 흰 바탕 4곳에 제작 시기, 봉안 장소, 시주 물품, 제작과 시주에 참여한 인물 등을 기록한 화기를 남겼다. 순치 13년 정유(1657) 충청도 전의 운주산 비암사 영산회 괘불탱을 봉안한다고 밝히고, 시주 물품과 시주한 인물을 열거하였다. 시주 물품은 바탕, 진분, 수도황, 아교, 어교 같은 불화 재료부터 복장, 공양까지 다양하다. 시주에 참여한 인물은 총 68명이다. 불사 관련 소임을 맡았던 인물을 기록하는 연화질 부분은 손상되어 글자 판독이 어렵지만, 감독한 스님과 제작을 담당한 화승을 적은 기록임은 알 수 있다. 참여한 화승은 신겸(信謙), 응상(應祥), 응열(應悅), 덕희(德熙) 등 10명이다. 이중 수화승 신겸은 1649년에 보살사 괘불도, 1652년에는 안심사 괘불도를 제작하였으며, 남아 있는 작품을 통해 17세기 중엽 청주와 청원, 연기 지역에서 활동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 신겸의 이름 앞에 ‘□□청도총섭 겸 승장(□□淸道摠攝兼僧將)’이라고 기록되어 있어, 지역 전체 사찰을 책임지는 도총섭과 의승군을 지휘하는 승장의 승직을 겸직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본사질에는 전 판사, 노덕, 전 주지 등을 기록하였다. 중앙의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문수보살, 보현보살, 사천왕, 범천, 제석천, 제자, 시방불, 용왕, 용녀, 건달바, 야차 등을 좌우 대칭으로 배치하였다. 구도, 존상의 표현, 색채와 문양 등 1652년 신겸이 그린 안심사 괘불도와 거의 동일하다. 석가모니불은 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법의를 걸친 채, 탁자 위의 연화대좌에 결가부좌한 모습이다. 왼손은 배 앞에 두고, 오른손은 손가락을 땅으로 향하게 한 항마촉지인의 손 모양을 하고 있다. 항마촉지인은 모든 악마를 항복시키고 정각(正覺)을 이룬 것을 상징한다. 머리는 나발을 윤곽선으로 묘사하고, 봉긋한 육계에 큼직하고 완만한 모양으로 중앙계주만 표현하였다. 참고문헌 『괘불조사보고서』Ⅲ, 국립문화재연구소, 2004. 송천, 이종수, 허상호, 김정민(2011), 『한국의 불화 화기집』, 도서출판 성보문화재연구원. 『한국 역대 서화가 사전』, 국립문화재연구소, 2011.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 포털〉 문화유산 검색, ‘세종특별자치시 유형문화재 전의 비암사 영산회 괘불탱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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