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표기 | 掛佛 |
|---|---|
| 지정명칭 | 진천 영수사 영산회괘불탱 |
| 제작시기 | 1653 |
| 수량 | 1 |
| 규격 | 925.8×553.5 |
| 재질 | 삼베 |
| 소재지역 | 충북 진천군 |
진천 영수사 괘불도는 세로 925.8㎝, 가로 553.5㎝의 바탕에 석가모니불의 영취산 설법 장면을 그린 군도 형식의 야외 의식용 대형 불화이다.
하단 중앙 2곳의 붉은색 직사각형 안에 주상전하를 비롯한 왕실 인물의 만수무강을 비는 축원을 적고, 시주 물품과 시주한 인물, 제작에 관여한 인물 등을 기록한 화기를 남겼다. 주상전하를 비롯한 왕실 인물은 효종과 인선왕후, 훗날 현종이 되는 왕세자를 말한다. 시주 물품은 바탕, 황금, 안료 같은 불화 재료, 원경, 영락, 등촉 같은 복장이나 점안 의식에 필요한 물품, 소금, 메주 등의 식재료 등이고, 시주에 참여한 인물은 총 149명이다. 시주자 이름 중 ‘개동’이나 ‘줏복’, ‘끗산’ 같은 낮은 신분 계층의 이름도 등장한다. 그리고 지전, 화원, 별좌, 공양주, 화주 등 제작과 의식에 직접 역할을 한 인물을 기록하였다. 화주는 심인(心印) 스님이 맡았고, 제작은 명옥(明玉)을 비롯한 화승 4명이 맡았다. 화기 끝에 순치 10년 계사 7월이라고 기록한 날짜를 밝혀, 1653년 7월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괘불도와 관련된 기록으로 1933년 간행된『상산지(常山誌)』에 수록된 기사가 전한다. 영수사 괘불도가 원래 백련암(白蓮庵)에 있던 것이었는데, 절이 폐사되면서 영수암(영수사의 옛 이름)으로 옮겨진 것이라는 내용이다. 그런데 백련암은 일제강점기에 옛 길상사 자리에 지어졌던 암자이다. 따라서 이 괘불도는 본래 진천 서쪽 태령산 길상사에 봉안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중앙의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약 140위의 존상을 가로로 질서정연하게 배열한 구도이다. 상단에 나한, 시방불, 용왕, 용녀, 신중, 비천 등을 배치하고, 중단에는 보살 18위, 가섭존자, 아난존자, 범천, 제석천, 사천왕 등을 배치하였다. 하단에는 불단 앞에 등을 보이고 앉은 스님 모습의 청문자(聽聞者)를 중심으로 부처님의 설법을 들으려고 모인 전륜성왕과 대중을 그렸다. 석가모니불은 오른 어깨를 살짝 가린 변형된 편단우견 형식의 법의를 걸치고, 높은 불단 위 연화대좌에 결가부좌한 모습이다. 뒤에는 연잎 모양의 머리 광배, 몸 광배를 표현하였다. 두 손은 모든 악마를 항복시키고 정각(正覺)을 이룬 것을 상징하는 항마촉지인을 취하였다. 머리는 윤곽선으로 나발을 묘사하고, 육계, 중앙계주, 정상계주를 표현하였다.
참고문헌
『괘불조사보고서』Ⅰ, 국립문화재연구소, 1992.
『문화재연감』, 문화재청, 2009.
송천, 이종수, 허상호, 김정민(2011), 『한국의 불화 화기집』, 도서출판 성보문화재연구원.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 포털〉 문화유산 검색, ‘보물 영수사 영산회 괘불탱’.
한국학중앙연구원, 〈항토문화전자대전〉 디지털진천문화대전 통합검색 ‘진천 영수사 영산회 괘불탱’.
관련자료
더보기 +
더보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