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표기 | 掛佛幀 |
|---|---|
| 지정명칭 | 화엄사 영산회괘불탱 |
| 제작시기 | 1653 |
| 중수시기 | 1977, 1980년대 후반 |
| 수량 | 1 |
| 규격 | 1,208.0×769.4 |
| 재질 | 삼베 |
| 관련유물 | 괘불함(조선후기) 1점 |
| 소재지역 | 전남 구례군 |
구례 화엄사 괘불도는 세로 1,208.0㎝, 가로 769.4㎝의 바탕에 석가모니불의 영취산 설법회 장면을 그린 군도 형식의 야외 의식용 대형 불화이다.
하단 중앙의 붉은색 직사각형 안에 주상전하, 왕비전하, 세자저하의 장수를 축원하고, 제작 시기, 제작과 시주에 참여한 인물 등을 기록한 화기를 남겼다. 순치 10년 계사(1653) 5월 29일 괘불탱 시주질이라고 적어, 1653년 괘불도 제작을 위한 시주자 명단임을 알 수 있다. 시주한 물품별로 시주자의 이름을 기록하고, 이름 뒤에 양주, 단신을 기재하였다. 시주에 참여한 인물은 58명이고, 시주 물품은 족자, 바탕천, 공양, 삼록, 황금, 백반, 향낭, 등촉, 원경, 밀가루, 메주 등 불화 재료부터 식재료까지 다양하다. 향을 담는 주머니를 시주한 ‘익평위 양위(益平尉兩位)’는 효종의 둘째 딸인 숙안공주(淑安公主)와 홍득기(洪得箕) 부부를 말한다. 시주질 뒤에 기록한 사(賜) 항목에 국가로부터 품계를 받은 스님과 주지 등 당시 화엄사의 주요 스님들을 기록하고, 연화질 항목에는 증명, 화원, 공양주, 별좌, 대화사, 인권 등 제작에 관여한 인물을 기록하였다. 감독은 쌍휘(雙輝) 스님이 맡았고, 제작은 지영(知英) 스님을 비롯한 6명의 화승이 담당하였다.
중앙의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문수보살, 보현보살, 사천왕, 십대제자 등을 좌우 대칭으로 배치한 구도이다. 사천왕을 화면 네 모서리에 배치하여 네 방향을 지키는 듯한 효과를 주었다. 석가모니불은 복견의(覆肩衣)를 더한 편단우견 형식의 법의를 걸치고, 불탁 위의 연화대좌에 결가부좌한 모습이다. 두 손은 마귀를 물리치고 정각(正覺)을 이룬 것을 상징하는 항마촉지인을 취하였다. 머리는 윤곽으로 나발을 묘사하고, 솟아오른 육계에 반달형 중앙계주, 구슬형 정상계주를 표현하였다. 이마 중앙에 ‘八’ 모양 머리카락을 묘사하였다.
괘불도와 관련된 유물로 괘불함 1점이 남아 있다. 길이 864.4㎝, 높이 35.3㎝의 목제 상자형 궤로 조선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괘불조사보고서』Ⅱ, 국립문화재연구소, 2000.
『동산문화재 지정조사보고서(국보)』, 문화재관리국, 1997.
『동산문화재 지정보고서(96~97 지정편)』, 문화재관리국, 1998.
『미술관 테마전 국보 301호 화엄사 괘불』, 국립중앙박물관, 2008.
송천, 이종수, 허상호, 김정민(2011), 『한국의 불화 화기집』, 도서출판 성보문화재연구원.
『대형불화 정밀조사 보고서』18 국보 제301호 화엄사 영산회 괘불탱, 문화재청, (사)성보문화재연구원, 2018.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 포털〉 문화유산 검색, ‘국보 화엄사 영산회 괘불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