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표기 | 佛像 |
|---|---|
| 지정명칭 | 보살사 영산회괘불탱 |
| 제작시기 | 1649 |
| 중수시기 | 2001, 2013 |
| 수량 | 1 |
| 규격 | 687.6×423.2 |
| 재질 | 비단, 모시 |
| 소재지역 | 충북 청주시 |
청주 보살사 괘불도는 세로 687.6㎝, 가로 423.2㎝의 바탕에 석가모니불의 영축산 설법회 장면을 그린 군도 형식의 야외 의식용 대형 불화이다.
하단 중앙의 붉은색 직사각형 안에 제작 시기, 왕실에 대한 축원의 글, 시주받은 물품, 시주와 제작에 참여한 인물을 기록한 화기를 남겼다. 붉은색 바탕 안료와 먹으로 쓴 글자 일부가 떨어졌지만, 숭정 23년 기축(1649) 10월 초□일에 부처님 상의 조성을 마쳤다는 기록은 확인할 수 있다. 시주 목록이라고 적고, 괘불탱 대시주, 괘불 바탕 대시주, 후배지 대시주 등 바탕, 후배지, 후배포, 황금, 복장 등 물품별로 시주에 참여한 인물을 기록하였다. 이름 옆에는 통정대부, 비구 같은 사회적 지위를 알 수 있는 내용도 기재하였다. 또 ‘끗남’ 같은 낮은 신분 계층에서 사용하는 이름이 기록되어 있어, 양반부터 낮은 신분까지 시주에 참여하였음을 알 수 있다. 증명과 화원 같이 제작에 직접 역할을 맡았던 인물은 화원소 항목에 기록하였다. 감독은 혜해(慧海) 스님이 맡았고, 제작은 신겸(信謙), 지변(智辨), 유열(唯悅), 덕희(德熙), 인보(印寶), 경범(敬凡) 6명의 화승이 담당하였다. 수화승 신겸과 덕희 스님은 3년 후인 1652년에는 청주 안심사 괘불도 제작에 참여하였다.
중앙의 연화대좌 위에 앉은 석가모니불을 여러 권속이 빽빽하게 에워싼 구도이다.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하단에 팔대보살, 사천왕, 청문자를 배치하고, 중단에는 십대제자, 신장, 연각불 등 설법을 듣기 위해 모인 청중을 좌우 대칭으로 배치하였다. 상단에는 연화좌에 앉아 하늘에서 내려오는 시방불을 그렸다. 본존 석가모니불은 연잎 모양의 머리 광배와 몸 광배를 갖추고, 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편단우견 형식의 법의를 걸쳤다. 발목은 치견(侈絹) 장식을 착용하였다.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 향하게 하여 배 앞에 두고, 오른손은 손끝이 땅을 향하게 아래로 내린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다. 머리는 윤곽만으로 나발을 묘사하고, 반원형 중앙계주를 나타냈다.
참고문헌
『괘불조사보고서』Ⅰ, 국립문화재연구소, 1992.
『동산문화재지정보고서(96~97 지정 편)』, 문화재관리국, 1998.
송천, 이종수, 허상호, 김정민(2011), 『한국의 불화 화기집』, 도서출판 성보문화재연구원.
『대형불화 정밀조사 보고서』23 보물 제1258호 보살사 영산회 괘불탱, 문화재청, (사)성보문화재연구원, 2019.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 포털〉 문화유산 검색, ‘보물 보살사 영산회 괘불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