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연등회의 가치

오랜 전통의 축제이자 민족의 명절인 연등회 인도에서 시작된 불교가 한반도로 전해지면서 등(燈)축제는 전통과 융합하며 다채롭게 변화 발전해 왔다. 신라 경문왕 6년(866년)에 왕이 관등놀이를 즐기고, 함께 잔치를 벌였다는 『삼국사기』 첫 기록 이후, 연등회는 한민족의 명절이자 축제일로 자리잡았다. 고려에서는 정월대보름 연등회가 민족의 명절이었다.[1]『고려사』 권84, 지(志) 권38, 형법(刑法) 1 금형조(禁形條)에 따르면, 정월초하루, 정월대보름 연등회, 한식, 삼짇날, 단오, 추석, 중구, 팔관회, 동지가 고려의 9대 명절[俗節]이었다. 유교를 신봉하던 조선에서도 “우리나라 풍속에 4월초파일을 부처님탄신일이라 하여 집집마다 등을 켜놓는다. 장대를 많이 세우고 수십 개의 등을 연달아 달며, 등으로 새나 짐승, 물고기나 용의 형상을 만들어 대단히 호화롭게 만들기에 힘썼으므로, 구경하는 사람이 많이 모여 들었다”는 기록이 『조선왕조실록』에 등장한다. 제야·정월대보름과 함께 4월초파일은 통행금지가 해제되는 특별한 날이었다. 한양뿐 아니라 조선 전역에서 한밤에도 등불을 대낮같이 밝혀놓으며 관등놀이를 즐겼으니 연등회는 민족의 큰 명절이었다. 세시풍속이란 음력 정월부터 섣달까지 해마다 같은 시기에 반복적으로 전해져오는 특별한 행사를 말한다. 오늘날 한식이나 동지 같은 세시풍속들이 사라지는 분위기지만 4월초파일 연등회는 설과 추석 명절처럼 맥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연등회는 통일신라 이래 1,200여 년 역사를 관통하며 선조들의 전통을 면면히 이어오는 세시풍속이다. 다양한 세계의 등축제가 있지만 연등회는 오랜 세월 동안 단절 없이 계승된 축제로서의 가치가 높다. 공동체 정신으로 세대전승을 이루는 연등회 연등회는 전통등 교육과 전승의 전 과정이 공동체적인 협업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연등회때 필요한 행렬등에서부터 대형 장엄등 제작, 연희단과 율동단의 연습까지 주로 소속 단체를 통해 전승된다. 연등회보존위원회의 등강습을 통해 단체마다 행렬등과 장엄등을 손수 만드는 문화가 자리 잡았다. 손재주가 부족하거나 바쁜 일과 속에서도 함께 모여 예년보다 더 멋진 등 만들기에 의견을 내고, 마음을 나누고, 노하우를 공유하면서 함께 작업한다. 이 같은 공동체의 열정은 손에 들고 걷던 행렬등을 기역(ㄱ)자 형태로 높이 드는 아이디어로 이어졌고, 티(T)자 등대 아이디어가 실현되면서 한 손에 두 개의 등을 함께 다는 문화로 바뀌었다. 내려 들던 등을 올려 들게 되자 연등행렬은 더욱 밝고, 아름답고, 화려한 축제로 변모했다.
〈그림 1〉 티(T)자 등대의 목어등 연등행렬 ⓒ연등회보존위원회
단체들은 연등회를 마치면 다음 해 연등회를 준비한다. 해마다 치러지는 연등회를 통해 단체들이 함께 쌓은 다양한 노하우와 기량은 자연스럽게 세대 전승되고 있다. 또한 공동체마다 전통문화를 창의적으로 계승하며 오늘의 연등회 문화를 만들고 있다. 자발적 참여자들이 열정으로 일구는 신명 고려 유학자 이색(李穡)은 병 중에도 관등놀이를 즐기기 위해 힘겹게 산에 올랐고 예년보다 수승한 연등의 장관에 압도되어 찬탄의 시를 지었다. 조선 집현전의 학자들도 앞다퉈서 연등의 아름다움을 노래했다. 인조는 오색비단등 수백 개를 달아놓고 궁궐에서 관등놀이를 즐겼고, 정조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연등의 최고 관람 장소로 자하문(紫霞門)을 꼽았다. 구한말 국경 부근에 머물던 우국지사 이남규 의사는 함흥의 1만호가 넘는 집집마다 등불을 밝히고, 산등성이 겹겹으로 비단등을 달아놓은 연등회를 즐기며 그 장관을 시로 읊었다. 일제 강점기에도 경성의 남산에 올라 관등놀이를 즐기려는 인파들이 수만에 달했다. 이처럼 연등회는 오랜 역사 동안 누구랄 것 없이 등을 만들고, 관등놀이를 즐기며, 서로가 신명나는 축제를 만들고 즐겼다. 자발적으로 연등회를 만들어 온 전통은 오늘날도 변함이 없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꼽는 연등회의 핵심 단어는 ‘형형색색(Colorful)’, ‘활력(Activity)’, ‘기운(Energy)’으로 대표된다. 그들이 도무지 알 수 없는 활력과 에너지가 축제 현장에 넘쳐나는 가장 큰 이유는 참여자 스스로가 축제의 주인공이란 점이다. 참여자들은 ‘우리 축제’라는 주인의식으로 자신의 시간을 쪼개어 헌신적으로 축제를 준비한다. 지난해보다 더 좋은 연등회를 위해 서로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고, 손수 열정적으로 준비해서 선보이니 참여자 스스로가 충분히 행복하다. 자연히 연등회는 기운생동하는 역동적인 현장이 된다. 국적, 인종, 종교, 장애, 편견의 경계를 넘는 연등회 고려의 연등회에서는 왕과 신하가 어우러져 시를 읊었다. 행렬이 이뤄지는 거리에서는 서역의 연희단이 퍼포먼스를 펼쳐 국제적인 문화교류가 이뤄졌다. 연등회는 왕에서부터 서민들까지 각기 등을 밝히고 소망을 기원하며 즐기던 축제였다. 불교에서 출발했으나 유학자들도 진심으로 즐겼다. 종교를 떠나 만인이 즐기는 명절이라 가능한 일이었다. 여성도, 아이도 그 어떠한 경계 없이 하나 되어 즐겼다. 1990년대 초반 서울 토박이 인터뷰[2]서울특별시 문화재위원회 편(1993), 『서울민속대관 5. 점복신앙편』, 서울특별시.에 따르면 4월초파일이면 종교가 없거나 종교가 달라도 너나없이 산사를 찾았다고 했다. 놀이 삼아 절에 가 등을 달고, 복을 빌고, 탑돌이도 하며 관등놀이를 즐겼다. 오늘날 연등회가 생명력 넘치는 역동적인 이유 역시 편견없이 함께 어우러져 즐기는 참여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행렬에서 어린이나 어르신이나 남녀노소 막론하고 함께 보폭 맞춰 걷는다. 걷는 동안 서로 배려하며 속도를 조절하다 보니 낙오되는 이가 없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구별도 없다. 누구든 불편 없이 행렬에 참여할 수 있도록 온 마음을 쏟기 때문이다. 행렬에 참여하는 단체마다 회원 숫자가 다르고 재정 능력도 차이가 있다. 등 크기가 단체마다 제각각이고, 모양도 다양하고 불빛도 다르지만, 연등행렬 현장에서는 놀랍도록 서로 잘 어우러진다. 저마다 열심히 만든 등을 높이 들고 걷는 걸음은 위풍당당하다. 큰 단체와 작은 규모의 단체가 무엇을 어떻게 나눌까를 고민하고 실천하기 때문이다. 참여자들은 오직 정성을 다해 등을 만들고 온 마음으로 즐기는 일에 최선을 다한다. 정성스럽게 밝힌 등불만이 밤을 밝힌다는 빈자일등의 정신이 곧 연등회의 정신이다. 또한 연등회에는 불교문화를 공유하는 나라의 국민들이 참여한다. 이주노동자들부터 다문화가족들, 유학생들까지 적극 참여해 자국의 문화도 알리고, 한국의 불교문화도 배운다. 일부러 연등회 일정에 맞춰 여행 오는 외국인 숫자도 늘고 있다. 대동한마당이 열리는 종각 네거리는 피부색이 다르고, 국가도 다르고, 세대도 다르고, 종교도 다른 무수한 이웃들이 강강술래 노랫가락에 맞춰 하나가 된다.
〈그림 2〉 회향한마당 난장 꽃비와 어울리는 사람들 ⓒ연등회보존위원회
시대정신이 살아있는 연등회 연등회는 역사 이래 오늘날까지 시대와 함께 숨 쉬는 현장이었다. 고려 성종 때 연등회가 중단되자 신하 이지백(李知白)이 상소를 올린다. 중국의 풍속을 따를 것이 아니라 선왕들처럼 연등회를 열어 국가를 보전하고 태평시대를 이뤄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즉, 민족의 자주성과 정통성을 갖추려면 연등회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그만큼 연등회가 어려운 시기에 백성들 사이에서 구심점 역할을 해왔음을 엿볼 수 있다. 2014년 연등회를 열흘 앞두고 세월호 침몰 사고가 났다. 참혹한 대형 참사 앞에서 온 국민이 슬픔에 젖었다. 줄지어 열릴 예정이던 전국의 축제들은 취소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연등회는 열렸다. 역사 이래 연등회는 즐거울 때도, 힘겨울 때도 민족과 함께 해왔기 때문이다. 행복할 때는 축제지만 아픔이 있을 때는 함께 위무하고 혼을 기리는 의례의 역할을 하는 것이 연등회의 진정한 목적이다. 열흘 남짓, 짧은 일정 동안 국민적 슬픔을 나누고 희망을 모으는 연등회를 준비했다. 기존에 공들여 만든 색색의 등을 접어둔 채, 희생자들의 극락왕생을 기원하고 실종자들의 무사귀환을 기원하는 흰등을 새로이 만들었다. 참여자들의 적극적인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거리의 시민들도 함께 눈물바다를 이루며 추모와 기원의 시간을 가졌다. 아픔도 나누면 힘이 된다는 저력을 보여주는 연등회였다.
〈그림 3〉 2014년 세월호 애도 연등행렬 ⓒ연등회보존위원회
외환위기로 경제적 고통을 당해야 했던 구제금융 시기(1997년~1998년)의 연등회는 위로와 희망을 전하며 화제를 모았다. 연등회를 보름 앞두고 남북 정상이 ‘판문점 선언’을 했던 2018년에는 북한의 문헌을 통해 복원 재현한 북한 전통등 19점을 행렬의 선두에 선보이기도 했다. 그해 연등회는 평화와 화합을 기원하는 열기로 가득했다.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위원회는 연등회의 이러한 저력에 주목했다. 2020년 마침내 “기쁨을 나누고 위기를 극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찬사와 함께 연등회를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한 것이다.
· 집필자 : 이윤수((사)문화예술콘텐츠진흥원 전문위원)
관련주석
  • 주석 1 『고려사』 권84, 지(志) 권38, 형법(刑法) 1 금형조(禁形條)에 따르면, 정월초하루, 정월대보름 연등회, 한식, 삼짇날, 단오, 추석, 중구, 팔관회, 동지가 고려의 9대 명절[俗節]이었다.
  • 주석 2 서울특별시 문화재위원회 편(1993), 『서울민속대관 5. 점복신앙편』, 서울특별시.

관련자료

  • 연등회 세계문화유산 등재 관련 UNESCO | 2020 | Consent of communities:English/Korean(42487) CONVENTION FOR THE SAFEGUARDING OF THE INTANGIBLE CULTURAL HERITAGE(47225) ICH inventory:English/Korean(45759) 상세정보 출처
  • 연등회 세계문화유산 등재 관련 UNESCO | 2020 | DRAFT DECISION 15.COM 8.b.1: Yeondeunghoe, lantern lighting festival in the Republic of Korea(no.00882) 상세정보 출처
  • 연등회 세계문화유산 등재 관련 문화재청 | 2012 | 2020년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대표목록 등재 신청 종목 선정(안건번호 무형 2017-08-002) 연등회' 중요 무형문화재 신규종목 지정 심의사항(안건번호 무형2012-02-001 연등회' 중요 무형문화재 신규종목 지정(안건번호 무형2011-04-007) 상세정보 출처
  • 연등회 세계문화유산 등재 관련 문화재청 | 2012 | 2012년 인류무형유산 등재 신청 (안건번호 세계2012-01-003) 2018년도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 등재신청서 제출 결과 보고(안건번호 세계 2018-01-05) 2020년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대표목록 등재신청종목 최종선정 심의(안건번호 세계 2017-04-02) 상세정보 출처
  • 더보기  +

지리정보

    • 내용
  • 위로
  • 불국토
    문화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