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가 인도에서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전래되면서 전통적으로 등(燈)을 밝히던 풍습이 융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 가운데 고구려와 백제의 연등 풍습은 사료로 전하는 것이 없다. 일본이 651년에 2,700여 등불을 밝혔으며, 천등회, 만등회와 같은 연등행사가 활발했던 점으로 보아, 일본으로 불교문화를 적극 전해준 백제의 연등 행사 역시 남달랐을 것으로 짐작된다. 고구려의 경우 덕흥리 벽화 속 춤추는 선인과 옥녀가 등롱을 들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벽화로나마 연등 풍습의 일면을 엿 볼 수 있다.
한반도의 연등 행사 관련 첫 문헌 기록은 『삼국사기』에 등장한다.
정월...(중략)...15일에 황룡사에 거둥하여 연등을 구경하고 백관들에게 잔치를 열어주다.
〈그림 1〉『삼국사기』 권11 신라본기11 ©국사편찬위원회
866년(경문왕 6) 정월대보름에 왕이 황룡사를 찾아 간등(看燈)했다. 불 밝힌 등을 그냥 보는 게 아니라 자세히 보았다. 왕이 절을 찾아와 등을 자세히 살폈다는 것은 그곳에 화려하게 장엄된 연등이 있었으며, 이를 즐기며 봤다고 해석된다. 통일신라시대 정월대보름 밤, 불을 밝혀놓은 등만으로도 큰 볼거리였을 것이다. 연등을 보고 즐긴 왕이 함께한 신하들을 위해 잔치를 마련했다. 연등회는 곧 축제였다. 이후 890년(진성왕 4) 정월대보름에도 왕이 황룡사로 행차하여 간등했다는 기록이 전한다. 신라의 연등회는 모두 정월대보름에 호국의 염원을 담은 황룡사에서 개최되었다.
한반도에서는 인도와 중국에서 이루어진 행상 행렬을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거리행렬과 관련해서 고구려의 행렬도를 주목하게 된다. 고구려에는 행렬도가 그려진 고분벽화가 무려 12개, 고분 계통의 무덤이 8개가 전할 만큼 행렬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 행렬도마다 연희단과 악대의 공연 모습은 빠짐없이 그려져 있다. 고분벽화를 통해 살필 수 있는 고구려의 행렬은 고려와 조선으로 이어지면서 어가행렬의 근간이 되었을 것이다.
신라의 행렬은 사경 신앙에서 찾아진다. 신라의 경우 경전을 옮겨 적는 사경 신앙이 붐을 이뤘다. 국내 최고(最古) 사경인 『신라백지묵서대방광불화엄경』 발문에는 사경 조성 과정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사경할 때 십수 명이 향과 꽃을 길 위에 뿌리고 연주하고 노래하고 염불하며 길을 나섰다. 눈길을 끄는 거리행렬이었을 것이다. 거리행렬은 사경의 공덕을 널리 알리는 역할과 함께 걸으면서 주위를 정화하는 의식을 담당했을 것이다.
〈그림 2〉 『신라백지묵서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1~10, 44~50 발문
· 집필자 : 이윤수((사)문화예술콘텐츠진흥원 전문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