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등회의 기원
등(燈)은 불을 밝히는 도구이다. 인류는 다양한 등을 발전시키며 일상의 어둠을 밝혔다. 뿐만 아니라 저마다의 종교를 통해 등불을 밝히며 신앙을 굳건히 이어왔다. 특히 불교에서는 등불이 어둠을 밝힌다는 점에서 지혜를 밝힌다는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등불이 세상을 밝히듯이 자신과 이웃을 위해 지혜를 밝히는 과정이 불교의 수행이다. 석가모니는 열반에 드시면서 ‘스스로 등불을 삼고, 진리를 등불 삼으라’는 마지막 말씀을 남기셨다. 삿된 것에 의지하지 말고, 불성을 지닌 자신을 믿고, 가르침에 의지하라는 유훈이다.
경전에 빈자일등(貧者一燈)의 비유가 있다. 가난한 노인이 지극한 마음으로 밝혀놓은 등불 하나가 왕이 밝혀놓은 무수한 등불의 행렬보다 마지막까지 환히 빛났다는 일화다.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밝히는 등불이 으뜸임을 일러주는 가르침이다. 연등회는 이 빈자일등의 정신을 기본으로 삼는다.
〈그림 1〉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약사』
‘가난한 여인이 등불을 공양한 인연[貧女燈緣]’
고대 아시아에는 행상(行像) 축제가 있었다. 절에 모신 불상을 가마나 수레에 모시고 거리로 나와 순행하는 행사다. 석가모니는 길에서 나서 한평생 길 위에서 진리를 설파하시고 마침내 길 위에서 열반에 드셨다. 그런 부처님의 삶과 가르침을 돌아보는 행사가 곧 행상이다. 이때 거리에서는 가무백희(歌舞百戱) 공연이 빠지지 않았다. 불상 주위를 화려하게 꾸민 장관과 다채로운 공연을 보기 위해 수많은 인파가 모여들었다.
서역의 등축제
등을 밝히는 일은 부처님께 올리는 소중한 공양 중 하나다. 자연히 등공양은 불교행사에 있어서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의식이었다. 399년에 인도로 떠난 중국 승려 법현이 남긴 『고승법현전』에는 며칠씩 이어지는 등 행사 기록들이 전한다. 당시 인도에서는 음력 2월 8일을 부처님오신날로 기렸다. 이날 불상을 모시고 행렬을 떠나기 전 한 장면은 다음과 같다.
사륜마차를 만들고 그 위에 대나무를 엮어 5층을 만들었다...(중략)...감실에는 좌불을, 그 곁에 보살상을 모셨다. 이와 같은 사륜마차는 스무대 가량 되는데 수레마다 장식이 각각 달랐다...(중략)...이날 밤은 밤새 연등과 기악으로 공양을 올렸다. 이러한 것은 나라마다 모두 같았다.
이미 4세기 후반 무렵, 부처님오신날이면 수레 위에 5층 높이 규모로 불단을 만들고, 그런 거대한 수레 20대가 거리행렬을 가졌다. 장엄한 행렬 앞에서 수행자나 백성들 모두 성대하게 즐기는 축제였을 것이다. 거리행렬을 위해 수레를 정성스럽게 장엄하는 모습이나 밤새 등 공양을 올리며 불을 밝히는 모습은 오늘날 우리의 연등회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법현이 찾아간 당시 사자국, 오늘날의 스리랑카에서는 인도와 달리 장식한 코끼리 등위에 부처님의 치아사리를 모신 행상(行象)[1]인도의 행상(行像)은 불상을 수레나 가마에 모신 거리행렬을 말한다. 반면, 스리랑카의 행상(行象)은 한자 그대로 코끼리를 멋지게 장식하고, 코끼리 등 위에 부처님의 치아사리를 모신 거리행렬이다.이 이뤄졌다. 열흘 걸려 코끼리를 장식하고, 90일 동안 성안을 돌며 마지막에 무외정사로 향했다가 다시 불치사로 모셔 왔으니 무려 100일 동안의 축제였다. 당대 승려만 6만여 명에 달했다고 하니 행렬이 이어지는 동안 무수한 사람들이 등을 밝히며 부처님오신날을 즐겼다.
7세기 중국 승려 현장의 『대당서역기』에는 더 화려하게 발전한 거리행렬이 등장한다. 오늘날 쿠차에 해당하는 굴지국의 경우 성 밖에서 아름답게 제작된 수레가 성을 향해 1.5km를 행진하면 성 앞에서 왕이 모든 예를 다하며 불상을 맞았으며, 다시 행렬은 14개 절을 돌며 14일 동안 진행되었다고 한다.
중국의 등축제
인도에서 시작된 거리행렬인 행상은 5~6세기 중국 북위의 사찰 풍속을 기록한 『낙양가람기』에 다채롭게 소개되고 있다. 낙양을 대표하는 사찰 장추사에서는 부처님오신날을 나흘 앞둔 4월 4일부터 행상에 나섰다. 거리에는 행상과 다채로운 기예 공연을 보기 위해 인파가 몰려 ‘시중의 집이 텅 빌 정도’였으며 심지어 행상이 멈춰 서는 곳에서 압사 사고까지 있었다. 낙양지역 전 사찰의 행상이 모여든 경명사에는 불상만 무려 1천여 구에 달했다. 휘황찬란하게 장엄한 탑 안에 불상이 모셔져 있고, 1천여 구의 불상을 실은 수레와 말들이 사찰 입구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진풍경이었을 것이다.
이후 중국 역사에서 행상 기록은 전하지 않는다. 대신 등 풍속 기록들이 풍성하다.
한무제 시절, 정월대보름을 원소절로 명명했다. 우주를 주관하는 태일신(太一神)에게 제사를 올리는 날이었다. 상원일이라고도 한다. 불교가 전래된 무렵에는 황실을 중심으로 정월초파일에 연등 행사가 열렸다. 이후 수나라 때 상원일과 등 행사가 결합한다. 이후 정월대보름에 등불을 밝혀놓는 풍속을 상원등회라 했다. 특히 상원등회는 밝혀놓은 등을 보고 즐기는 관등(觀燈) 풍속으로 진화한다. 당나라에서는 상원등회가 연휴로 자리 잡았고, 통금이 해제되어 누구라도 관등놀이를 하며 밤 문화를 즐길 수 있었다.
『조야첨재(朝野僉載)』[2]7세기 말 당나라 문인 장주오가 쓴 옛이야기 모음집이다. 조선 숙종때 편찬한 조야첨재와는 구별된다.에는 713년(예종 2) 정월대보름과 16일 밤에 수도 장안 안복문 밖에 높이가 스무 장이 되는 등륜이 만들어졌음을 소개하고 있다. 아름다운 비단을 입히고 금옥으로 장식한 5만 개의 등불이 타올라 마치 꽃나무와 같았다고 했다.
송나라 시대로 오면 상원등회는 태평성대의 상징이었다. 각양각색의 등을 구경하기 위해 구름처럼 인파가 몰렸다. 등회 기간도 사흘 밤에서 닷새 밤으로 늘었다. 북송 시대의 풍속을 담은『동경몽화록(東京夢華錄)』에는 ‘산 위나 산 아래 모두 등불 수십만 개가 반짝거린다’는 기록도 있다. 상원등회를 앞두고 전문적으로 등을 만들어 파는 시장인 등시(燈市)도 등장했다.
상원등회는 원나라 집권기에 잠시 주춤했다. 명나라 대에 이르러 한족의 자존심 회복을 위해 상원등회가 다시 부활한다. 청나라를 찾은 조선 연행사 사절들에게 등회 관람은 필수 코스였다. 19세기의 조선 문신 김경선은 『연원직지(燕轅直指)』에서 청나라 상원등회가 복잡해서 자신의 수레를 찾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인파에 밀려 사고를 당하는 일들이 부지기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오늘날 중국에서는 상원등회의 풍속을 전국적으로 계승하고 있다. 문화혁명을 겪는 동안 사라진 전통 등회의 부활을 위해 중국은 주요 등회를 ‘국가 비물질 문화유산 목록’으로 등재하며 각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일본의 등축제
일본은 552년 백제 성왕이 일본에 금불상과 불경을 전한 것이 왕실 포교의 시초였다. 성왕의 뒤를 이은 위덕왕 시대에는 백제의 고승들이 무수히 일본으로 건너가 불교를 전파하고 백제 문화의 꽃을 피웠다.
『일본서기』에 등장하는 일본의 첫 연등 행사는 651년(효덕 2) 섣달그믐에 열렸다. 2,100여 명의 승려가 궁으로 초청되어 저녁에 2,700여 개의 등불을 뜰 안에 켜고 경을 읽었다. 한 해를 정리하고 새로운 한 해를 맞기 위해 밝혀놓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세밑에 왕가와 국가의 평안을 비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이듬해 섣달그믐에도 전국의 수행자를 궁으로 초대해 재를 설하고 등을 밝혔다.
무로마치시대의 『애양초』에 따르면 746년(天平 18) 섣달에 왕이 금종사를 찾아 7만5,700개의 등에 불을 밝혔고, 752년(天平勝寶 4) 정월에는 동대사를 찾아 2만개의 등을 밝혔다. 1088년(寛治 2) 2월에는 일본 불교 성지인 고야산을 참배하며 2~3만개의 등을 밝히며 재회를 베풀었다고도 한다.
신을 모시고 대접하고 기원하며 행복을 염원하는 일본의 축제가 마츠리(まつり)다. 무려 4세기에 걸쳐서 일본에서는 왕들이 절을 찾아 2만개의 등에서부터 7만 5천여 개에 달하는 등을 밝히고 재회를 베풀었다. 이처럼 등을 밝히며 즐기는 백성들이 늘면서 등 관련 축제인 마츠리가 세시풍속으로 자리 잡게 된다. 오늘날 일본에서는 7월 15일이면 전역에 걸쳐 등 관련 마츠리가 열린다. 돌아가신 이들을 추모하는 등불 행사다. 등 행사 가운데 대표적인 축제는 긴 장대에 벼 이삭을 상징하는 등롱 46개를 달고, 장대로 묘기를 펼치는 아키타현의 간토 마츠리, 4톤에 가까운 무사 장엄등을 이끌고 가는 행렬 축제인 아오모리현의 네부타 마츠리가 있다.
〈그림 2〉 일본 국중요무형민속문화재 田秋竿燈まつり
한편 불교의 행상과 유사한 행렬축제로 교토의 기온 마츠리가 있다. 역병을 막기 위해 869년에 시작된 이 축제는 970년부터 야사카신사(八坂神社)의 우두신을 모시고 조정에서 여는 축제가 되었다. 이때부터 가마를 메거나 수레를 끌고 마을을 돌았다. 화려한 그림이 역병을 쫓는다는 믿음 아래 마을 단위로 수레의 4면을 둘러 그림을 그려 넣는다. 축제는 7월 1일에 시작을 알리는 의식을 필두로 집채만 한 수레를 만들고, 순행 뒤 마무리 의식까지 모두 한 달 동안 진행된다. 백제불교가 전해진 이래 일본의 등 축제와 거리행렬은 오늘날까지 마을 축제로 이어지고 있다.
· 집필자 : 이윤수((사)문화예술콘텐츠진흥원 전문위원)
관련주석
- 주석 1 인도의 행상(行像)은 불상을 수레나 가마에 모신 거리행렬을 말한다. 반면, 스리랑카의 행상(行象)은 한자 그대로 코끼리를 멋지게 장식하고, 코끼리 등 위에 부처님의 치아사리를 모신 거리행렬이다.
- 주석 2 7세기 말 당나라 문인 장주오가 쓴 옛이야기 모음집이다. 조선 숙종때 편찬한 조야첨재와는 구별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