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지』 서명의 뜻과 책의 형태
현재까지 알려진 금속활자본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이하 ‘『직지』’로 칭함)은 유일하게 1종이 전해지고 있다. 상·하권이 모두 남은 목판본 『직지』와 달리 금속활자본은 하권 1책만 남아 있으며, 현 소장처는 프랑스 국립도서관이다.
『직지』는 백운 경한(白雲景閑, 1298~1374) 화상이 75세 때(1372년) 제자 법린(法隣)과 정혜(靜慧)의 요청에 의하여 임제종(臨濟宗) 18대손인 석옥 청공(石屋淸珙, 1272~1352) 화상으로부터 받은 『불조직지심체요절』을 증보하여 2권으로 편집한 것 중에서 하권에 해당한다. ‘불조직지심체요절’의 뜻은 선종(禪宗)에서 중시하고 표방하는 진리의 깨달음에 이르는 말인 불립문자(不立文字) 교외별전(敎外別傳)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의 명구에서 일컫는 직지인심의 의미를 지닌 것이다. 이는 선불교에서 이야기하는 가장 깊은 마음을 말하는 것으로 석가모니나 이후의 조사들의 말씀 중에서 근본 마음인 불성(佛性)에 관한 것을 요약하고 추려서 정리한 것이다. 즉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이라는 서명은 ‘백운 화상이 요약 정리한 불성에 관한 깊은 말씀’으로 해석될 수 있겠다.
본문의 내용은 직지인심 견성성불하는 데 요체가 되는 과거 일곱 부처님들로부터 석옥 청공의 제자인 법안 선사(法眼禪師)에 이르는 역대 선사와 조사들이 깨달음을 얻었던 순간을 법어·게송 등에 담아 전하는 구성이다. 여러 부처님과 고승의 가르침을 신중하게 선택하여 누구라도 선법의 핵심에 다가갈 수 있도록 하였다. 즉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이나 『선문염송(禪門拈頌)』 등과 같이 선사의 가르침을 담은 관계 문헌을 섭렵하여 역대의 여러 부처님을 비롯한 조사와 고승들의 게(偈)·송(頌)·찬(讚)·명(銘)·서(書)·시(詩)·법어·설법(說法) 등에서 선(禪)의 요체를 깨닫는 데 긴요한 것을 초록하여 편찬한 것이다. 금속활자본 『직지』는 백운 화상이 입적하고 3년 후인 1377년 청주 흥덕사에서 간행하였다.
이 글에서는 현존하고 있는 『직지』의 서지사항 중에 특징적으로 외형에 기록되어 드러나는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한다. 특히 표지 기록과 마지막의 간행 기록은 당시에 이 책의 간행 시기와 참여 인물 그리고 유전되는 과정을 알게 해 주는 단서들이다.
『직지』는 현재 본문의 첫 장이 떨어져 나가고 없는 하권만 전해지고 있다. 책 표지에 손으로 쓴 제목과 마지막 장에 활자로 인쇄된 제목이 서로 다르기도 한데, 빠진 내용은 목판본으로 완전하게 남아 있는 1378년의 간본으로 모두 확인 가능하다. 마지막 장의 제목 즉 권말제(卷末題)는 ‘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이며, 제목과 함께 간기로 ‘宣光七年丁巳七月日淸州牧外興德寺鑄字印施(선광칠년정사칠월일청주목외흥덕사주자인시)’가 확인되어 1377년 청주 흥덕사에서 인쇄된 금속활자본임을 알 수 있다. 간행에 도움을 준 문인(門人)은 석찬(釋璨)과 달잠(達湛)이고, 시주한 사람은 비구니 묘덕(妙德)이다.
『직지』의 전체 크기는 세로 24.6cm, 가로 17.0cm이며, 인쇄된 판의 테두리선인 반곽의 크기는 세로 21.0cm, 가로 14.8cm이다. 테두리선은 네 변이 모두 단선으로 조립되고 글자와 글자 사이를 구분하는 경계선이 있으며, 1장을 반으로 접어서 전면과 후면에 각 11행씩 모두 38장의 본문이 남아 있다. 1행에 금속활자로 인쇄한 글자(중간 자)는 18자에서 20자 정도이다. 활자의 크기에 따라 각 행마다 조판된 활자의 수량에 차이가 난다. 전체적으로 인쇄된 면은 활자를 짜 맞출 때 활자끼리 높낮이 차이가 있어서 먹색이 고르지 않으며, 이중으로 인쇄되기도 하였다. 먹색이 엷은 글자는 붓으로 가필(加筆)하여 획을 보완하기도 하였다. 고려 시대 관서(官署)가 아닌 지방의 한 사찰에서 활자를 주조하여 찍어 낸 책으로 형태적으로 활자의 크기와 글자 모양이 고르지 않고, 또 본문을 찍은 중자(中字)가 부족하여 소자(小字)로 인쇄하는 등 상태가 일정하지 않은 것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이렇듯 금속활자의 초기 형태를 담고 있는 『직지』의 외형은 인쇄된 책으로서 가장 이른 시기에 창안된 인류의 기술을 가감 없이 보여 주고 있다.
『직지』의 표지기록과 숫자 :『직지』가 전해지기까지
『직지』는 현재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주한 프랑스 초대 공사였던 콜랭 드 플랑시(Collin De Plancy, 1853~1922)와 예술품 수집가인 앙리 베베르(Henri Vever, 1854~1942)를 거쳐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되기까지 여러 과정이 기록과 흔적으로 남아 있다. 책의 표지와 표지 안쪽 면에 드러난 기록과 흔적만으로도 이 책이 이곳에 전해지기까지는 최소 2번 이상 소장자가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그 기록의 흐름을 시간 순서에 따라 하나하나 되짚어가면서 살펴본다면 『직지』의 전래 경위를 이해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데 좀더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직지』의 표지는 격자 모양 사방 연속의 마름모꼴 중앙에 꽃모양(연화무늬)이 들어 있다. 이 표지 문양은 적어도 한국의 전통 서적 표지 제작방식에서 18세기 이후부터 등장하는 문양으로 현재 표지가 후대에 새롭게 개장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즉 『직지』가 인쇄되고 수백 년이 지난 후에 누군가에 의해서 책 표지 및 표지와 본문 사이에 들어간 공격지(空隔紙)가 덧붙여지거나 개장된 것이다. 이는 세월이 오래된 옛 책의 경우 흔하게 나타나는 것으로 표지 안쪽 면과 공격지에 쓰인 종이의 색상이나 품질이 확연히 차이나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 그리고 표지와 표지 이면에 남은 각종 기록과 흔적을 통해서 최소한 콜랭 드 플랑시의 수집 이전부터 새롭게 장황된 것임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우리가 『직지』의 실물 사진을 보았을 때 우선 눈에 띄는 것은 표지의 장황과 함께 본문에 표시된 각종 숫자들이다. 그 숫자는 1377, 711, 3738, 9832, 그리고 109를 들 수 있겠는데 이들은 연도를 표시하기도 하고 단순한 번호 순서를 표시하기도 한다. 하지만 『직지』의 가치와 세계 인쇄사적 의미를 생각해 본다면 표지에 메모처럼 보이는 단순한 숫자라 할지라도 그 숫자가 기록된 배경을 이해해 둘 필요가 있을 것이다. 기록된 숫자들이 현재까지 『직지』가 전해지는 과정을 고스란히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 숫자 1377
〈그림 1〉 『직지』 표지에 표기된 ‘1377’
〈그림 2〉 『직지』 공격지 이면에 표기된 ‘1377’
1377은 『직지』를 이야기할 때 가장 많이 언급되는 숫자로 서기(西紀)로 표현된 간행 연도이다. 이 연도는 동양식 연도 표기인 선광칠년(宣光七年)을 서기로 표시한 것이며, 『직지』의 표지와 표지 다음의 공격지 앞면에 콜랭 드 플랑시의 글씨로 기록되어 있다. 표지에는 “1377년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간행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이라는 내용을 검은색 잉크로 썼으며,(그림 1) 공격지 앞면에는 “불교 교리의 내용, 1377년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인쇄된 현존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 인쇄본”이라고 연필로 썼다. 또한 공격지 이면에 붙어 있는 콜랭 드 플랑시의 장서표에도 연필로 쓴 “한국의 활자본으로 가장 오래된 책 1377년”이라고 적혀 있다.(그림 2)
두 번째 숫자 3738
3738은 모리스 쿠랑(Maurice Courant, 1865~1935)에 의해서 저술된 『한국서지 보유편(Supplément a La Bibliographie Coréenne)』에 수록된 『직지』의 서지번호이다. 『직지』에서는 공격지의 이면에 부착된 콜랭 드 플랑시의 장서표에 “B.C. no.3738”이라는 연필기록이 있다.(그림 3) 이는 모리스 쿠랑의 저술로 잘 알려진 『한국서지 보유편』에 수록된 3738번의 번호를 부여 받은 책과 같음을 의미한다.
〈그림 3〉 『직지』의 공격지 뒷면에 표기된 ‘3738’
『직지』가 『한국서지(Bibliographie Coréenne)』에 수록된 배경은 무엇일까? 모리스 쿠랑은 1885년 파리대학 법대를 다니는 동안 파리 동양어학교에 입학하여 중국어와 일본어를 배우고 1888년에 졸업하였다. 그는 졸업 후 1888년 9월에 중국 북경 주재 프랑스 공사관 통역관 실습생으로 파견되었다가 수석통역관이 되고, 1890년 5월 23일에 북경에서 서울로 전속되어 통역서기관이 되었다. 당시 서울에는 초대 주한 프랑스 공사관으로 콜랭 드 플랑시가 있었고 그의 권유에 의해서 한국에서 간행된 모든 서적의 목록을 만들게 된다. 그의 『한국서지』 제1책 서문에 의하면 콜랭 드 플랑시에 의해서 『한국서지』의 저술이 시작될 수 있었고 그의 조언을 받아 함께 작업에 참여한 것을 밝혀 두기도 하였다.
모리스 쿠랑이 작성한 『직지』에 대한 기록은 1901년에 출간된 『한국서지』의 제4책인 보유판(Supplément a La Bibliographie Coréenne)에 수록된 것이다. 『한국서지』는 1894년부터 1901년까지 총 4책이 출간되었으며, 3책은 1894년에서 1896년까지 3,240종의 한국 고서를 정리하였고, 나머지 1책은 보유편으로 1901년에 출간되어 모두 4책으로 알려져 있다. 콜랭 드 플랑시의 한국 고서 소장본이 대부분 제4책인 보유편에 수록되면서 『직지』도 함께 수록된 것이다. 『직지』에 대한 쿠랑의 해제인 3738번의 내용은 『직지』에 대한 최초의 목록으로 큰 의미가 있다.(그림 4)
〈그림 4〉 『한국서지 보유편(Supplément a La Bibliographie Coréenne)』에 수록된 3738번 『직지』
목록에는 3738의 번호와 함께 책의 한자서명, 불어식 발음표기와 서명의 의미 등을 표시하였다. 1책으로 책 크기는 대8절판(25×17cm)으로 제2권만 남아 있다는 것과 콜랭 드 플랑시(C.P.)의 소장본임을 밝혀 두었다. 서지적인 설명으로 『직지』 마지막 장의 간기를 “1377년 청주목 흥덕사에서 주조된 활자로 인쇄됨”으로 풀이하였으며, “이 내용이 정확하다면 활자의 발명이 조선 태종의 기록보다 26년가량 앞선 것”이라는 의견도 적고 있다. 이는 조선 태종의 계미자 주조 연도인 1403년을 염두에 둔 것으로 그가 작성한 『한국서지 보유편』의 서문에서도 매우 호기심을 끄는 문제로 별도로 언급할 정도였다. 그는 서문에서 주자사실(鑄字事實)의 공식 기록과 달리 등장하는 『직지』의 간행 기록으로 약간 혼란스럽지만 차후에 새로운 자료의 발견을 기다렸다가 해결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한편 “B.C. no.3738”이 쓰여진 콜랭 드 플랑시의 장서표(그림 3)는 플랑시의 한자식 이름인 “葛林德”의 첫글자와 “EX LIBRIS COLLIN DE PLANCY”를 인쇄한 표식이다. 이 장서표는 동양어학교 도서관과 파리 국립도서관에 소장된 그의 장서에 대부분 부착되어 있어서 구분이 쉽다.
세 번째 숫자 711
〈그림 5〉 『직지』표지에 표기된 ‘711’
1900년에 개최된 파리 만국박람회와 모리스 쿠랑에 의한 서지목록 작업이 완성된 이후, 콜랭 드 플랑시는 한국과 중국, 일본 등지에서 수집한 고서를 대부분 모교인 동양어학교에 기증하고 일부는 1911년 3월 27일부터 30일까지 호텔 드루오(Hotel Drouot)에서 열린 경매시장에 내놓았다. 모두 883종이었고 이 중에 700여 종이 한국의 것이었다. 표지의 좌측 상단에 종이로 붙이고 기록된 711번(그림 5)은 드루오 경매에 나올 때 부여된 일련번호다.
드루오 경매에 부여된 번호는 711번부터 787번까지가 고서, 788번과 789번은 판화, 790번부터 798번까지는 지도였다. 콜랭 드 플랑시가 내놓은 경매 목록에 의하면 약 80여 종이 한국고서였는데, 그 중에 45종을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구입하였다.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구입한 가격은 적게는 3프랑에서 많게는 135프랑에 이르기까지 다양하였고 고서와 판화, 지도를 구입한 것으로 드러난다. 하지만 고려 시대 간본인 711번 『직지』와 712번 『육조대사법보단경』은 예술품 수집가였던 앙리 베베르에게 낙찰되었다. 『직지』는 180프랑에 낙찰되었다. 711번과 712번이 그에게 낙찰된 연유는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아마도 다른 한국 고서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으로 경쟁되었고 이는 당시에 135프랑 정도를 최고가로 구입한 프랑스 국립도서관 측에는 부담스러웠을 가능성이 크다.
네 번째 숫자 9832
〈그림 6〉 『직지』본문 첫 장 앞면에 표기된 ‘Don 9832’
9832는 『직지』의 본문 첫 장 앞면 좌측 하단에 기록된 숫자로 “Don 9832”라 적힌 것이다.(그림 6) 앙리 베베르가 『직지』를 구입하여 소장하다가 1942년에 그가 사망하자 이 책은 그의 유언에 따라 1952년에 프랑스 국립도서관으로 기증된다. ‘Don’은 기증의 의미로 곧 9832는 기증될 때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부여한 기증 번호인 것이다. 『직지』의 공격지의 이면에 부착된 콜랭 드 플랑시의 장서표 바로 아래에 “COLLECTION H. VEVER”의 장서표가 부착되어 있다. 장서표 하단에는 푸른색 글씨로 “Paris 1911-1943”을 적어서 그가 『직지』를 소장했던 기간을 표시하였다.
다섯 번째 숫자 109
〈그림 7〉 『직지』표지에 부착된 ‘COREEN 109’
표지의 기록으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표지 하단과 표지 이면에 붙어 있는 ‘COREEN 109’가 인쇄된 종이다.(그림 5, 7) 이는 프랑스 국립도서관의 도서번호로 ‘한국본 109번’이라는 의미이다. 109번의 번호가 부여된 것은 프랑스 국립도서관이 콜랭 드 플랑시의 수집고서를 구입할 때 새로 부여한 도서 번호로 1번부터 110번까지가 고서, 111번 이후가 현대 서적인데 109는 고서의 제109번째 책이라는 의미인 것이다.
콜랭 드 플랑시로부터 프랑스 국립도서관이 구입한 것은 1번부터 72번까지가 고서, 73번부터 102번은 각종 지리서적과 지도, 103번부터 108번까지는 중국과 한국의 왕조표, 책력, 낱장으로 인쇄된 삼재부와 한글반절표 등이다. 108번까지가 처음에 경매에서 바로 수집한 것이었고 109번과 110번은 경매 당시 앙리 베베르가 구입하여 소장한 지 32년 후 그의 유언에 따라 손자가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기증하면서 부여된 번호이다. 앙리 베베르는 『직지』를 그 당시 180프랑에 구입한 것으로 경매기록부에 기재되어 있다. 참고로 앙리 베베르가 함께 구입했던 110번 서적은 『육조대사법보단경』이라는 고서로 원(元)나라 때 승려 몽산 화상(蒙山和尙) 덕이(德異)가 편찬한 것을 고려 후기인 1370년 전라도 남원의 박왕선사(敀王禪寺)에서 간행한 목판본이다. 『직지』와 마찬가지로 표지 하단과 표지 이면에 ‘COREEN 110’이 인쇄된 종이가 붙어 있다.
『직지』의 숫자 그리고 새로운 1번
이상과 같은 『직지』의 숫자를 다시 연결지어 보면 1377년에 간행된 『직지』는 1901년 모리스 쿠랑에 의해서 3738번의 서지 번호로 수록되었다. 1911년 3월 27일에 드루오 경매장에서 711번의 경매 번호로 출품되어 예술품 수집가였던 앙리 베베르에게 낙찰되었으며, 그의 사후 1952년에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9832번의 번호를 부여받고 기증되었다. 기증된 후 다시 프랑스 국립도서관의 번호 부여 순서에 따라 109번의 번호를 받고 오늘에 이른 것이다.
다섯 개의 숫자를 관련 인물이나 단체를 염두해 두고 다시 한번 더 생각해보면, 1377은 책의 저작자인 백운화상과 간행 관련 인물, 3738은 목록의 작성자인 모리스 쿠랑, 711은 경매에 이 책을 내놓은 콜랭 드 플랑시, 9832는 기증자 앙리 베베르, 109는 소장처인 프랑스 국립도서관과 연결지을 수 있다. 그 다음으로 나타날 수 있는 숫자와 관련 인물과 단체는 무엇일까?
모리스 쿠랑이 120여 년 전에 기대한 이 자료의 금속활자 인쇄 시점과 관련한 해결점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수많은 연구를 통해서 그리고 기록유산 등재를 위한 끊임없는 노력으로 대부분 해결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가 아직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예컨대 1378년에 경기도 여주에서 간행된 목판본 『직지』와의 관계를 규명해 내는 것이 그러하고, 콜랭 드 플랑시가 수집하기 이전부터 나누어진 것으로 보이는 금속활자본 상권(上卷)을 발굴해 내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며, 당시 활자본 간행을 위해서 애쓴 여러 인물들의 관계도, 같은 활자로 인쇄한 다른 서적에 대한 연구 등이 필요하다. 특히 금속활자본 상권의 발굴은 『직지』의 숫자를 생각하면서 떠올려 볼 수 있는 기분 좋은 바람이다. 그 숫자가 모리스 쿠랑의 목록 마지막 번호인 3821번의 다음 번이 될 수도, 109-1번이 될 수도 있겠지만 이왕이면 청주고인쇄박물관에서 새로운 1번으로 부여되기를 희망한다.(그림 8)
· 집필자 : 옥영정 (한국학중앙연구원 고문헌관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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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사36주년 다큐멘터리-직지의 최초 발견자 콜랭 드 플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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