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고려시대 인쇄문화와 『직지』

목판 인쇄의 시작 우리나라에서 인쇄는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삼국시대부터 목간(木簡)과 닥종이에 먹으로 쓴 사경(寫經) 등이 발견되었고, 문헌에서도 고구려, 백제, 신라에서 역사서를 편찬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중국으로부터 불교의 전래와 함께 각종 서적이 유입되면서, 이를 보급하고 유통하기 위해 목판 인쇄가 발전하기 시작했다. 1966년 경주 불국사 삼층석탑에서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이 발견됨으로써, 적어도 8세기 이전에 이미 먹과 종이 등의 재료를 구비한 인쇄가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1007년(고려 목종 10) 개성 총지사(摠持寺)에서 『보협인다라니경(寶篋印陀羅尼經)』을 목판으로 간행하여 탑에 봉안한 것을 비롯하여 고려 시대 목판 인쇄술은 1011년(현종 2)부터 1087년(선조 4)까지 경·율·논 한역 삼장(三藏)을 집대성한 초조대장경을 완성시켰다. 이어서 대각국사 의천(義天, 1055~1101)은 경·율·논 삼장에 대한 동아시아 주석서를 모두 수집해서 교감(校勘)하고 간행해 교장(敎藏)으로 집대성하고자 하였다. 1090년에 수집한 불서 목록인 『신편제종교장총록(新編諸宗敎藏總錄)』을 편찬해 이들 불서를 간행하던 중 의천이 병으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면서 교장 간행은 막을 내리게 되었다. 대장경과 교장이라는 일련의 대규모 국가 주도의 불서 간행 사업이 성행했던 무렵, 1101년(숙종 6) 3월에 “비서성(秘書省)의 서적 판본(板本)을 쌓아 놓아 훼손되고 있으므로, 서적포(書籍鋪)를 국자감(國子監)에 설치하여 이것을 옮겨 보관하고 널리 모사(摹寫)하고 인출(印出)하도록 하였다.”라는 『고려사』의 기록을 통해 중앙 기구인 서적포를 설치하여 모든 책판(冊板)을 이곳에서 인쇄 보급한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처럼 고려는 국가가 출판을 주도했고, 출판을 전담하는 관청을 두고서 서적이 출판되었다. 고려 금속활자 인쇄 한편 고려 문종 때 설치한 서적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는 기관이었던 서적점(書籍店)이 1392년(공양왕 4)에는 서적원(書籍院)이 되어 활자의 주조(鑄造)와 서적의 인쇄를 관장하고 영(令)과 승(丞)의 관원을 두었다. 이러한 사실을 미루어 볼 때, 서적점이 그 이전에도 단순히 인쇄된 서적뿐만 아니라 주자(鑄字)에 관한 일과 서적의 인쇄까지도 관장했을 것으로 보인다. 목판 인쇄는 한번 판각하여 많은 양을 인쇄할 수 있고 판목을 오래 보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 활자 인쇄는 이미 만들어진 활자를 가지고 판을 짜기 때문에 다양한 출판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으며 제작 속도 면에서 장점이 있다. 동양에서는 이 두 가지 방식이 상호 보완적으로 발달해 왔다. 중국에서 11세기에 창안된 활자인쇄법에 대한 정보와 기술은 이미 13세기 이전에 고려에 흡수되어 있었고 금속활자의 주조와 인쇄가 중앙 기관의 주도하에 이루어졌다. 현존하는 금속활자본 『직지』를 통해 알 수 있듯 14세기 후반에 지방의 사찰에서도 금속활자 인쇄물이 만들어질 정도로 고려의 인쇄문화는 이미 상당한 수준에 도달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직지』가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최고(最古)’의 금속활자 인쇄 기록물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금속활자로 인쇄한 ‘최초(最初)’의 인쇄물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직지』보다 앞선 13세기 초에 이미 활자를 주조해서 책을 인쇄한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상정고금예문』 이러한 사실은 이규보(李奎報, 1168~1241)의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 수록된 「신서상정예문발미(新序詳定禮文跋尾)」에서 확인된다. “고려 인종(仁宗, 재위 1122~1146) 때 평장사 최윤의 등 17명의 신하가 고금의 서로 다른 예문을 모아 50권의 『상정예문』을 만들었다.…(중략)…강화도로 천도할 때 예관(禮官)에서 이 책을 미처 챙기지 못했기에, 결국 주자(鑄字)를 사용해서 28본을 인출하여 제사(諸司)에 나누어 보내 간수하게 하였다.”는 내용이다.(그림 1) 이규보가 진양공(晉陽公) 최이(崔怡, ?~1249)를 대신하여 1234년(고종 21) 무렵에 지은 글로 당시에 이미 활자를 주조해서 인쇄할 수 있는 기술력을 갖추고 있었음을 보여 주는 증거이다.
〈그림 1〉『동국이상국집』후집 권11, 「신서상정예문발미(新序詳定禮文跋尾)」(한국사데이터베이스)
『남명천화상송증도가』 목판본 『남명천화상송증도가(南明泉和尙頌證道歌)』에 ‘1239년에 진양공 최이가 장인들을 모아 금속활자로 찍어 낸 주자본을 목판에 다시 새겨 오래도록 전하고자 하였다.’라는 발문이 있다.(그림 2) 이 책은 금속활자본을 저본으로 1239년에 다시 목판으로 제작되는데 이를 근거로 한다면 1239년 이전에 이미 금속활자가 존재했다는 의미가 된다. 비록 목판본이지만 고려 시대 활자인쇄의 시기와 성격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그림 2〉 『남명천화상송증도가』의 진양공 최이의 후서(後序) (동국대학교 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
1231년(고종 18)에 몽고군의 침입으로 강화도로 천도하였다. 1234년에는 부인사에 소장되었던 대장경판이 소실되자 진양공 최이의 주도로 대장경을 다시 판각하였다. 이러한 목판 간행이 성행했던 1230년대 무렵에 이미 금속활자를 주조해서 사용할 수 있는 인쇄술을 갖추고 있었음을 앞의 두 문헌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이 밖에도 목판본 중에서 금속활자본을 번각한 자료, 『직지』와 동일한 금속활자로 인쇄한 책의 번각본 등도 최근에 속속 발견되고 있다. 또한 무엇보다 논란이 되는 최초의 금속활자인 증도가자의 진위 여부와 『남명천화상송증도가』의 금속활자본 등 그 진위를 밝혀야 하는 연구가 아직도 많이 산재해 있다. 『동국이상국집』 1241년 이규보의 문집을 아들 이함(李涵, ?~?)이 전집 41권, 후집 12권으로 편집하여 간행하였다. 이후 1251년에 고종의 명으로 손자 이익배(李益培, ?~1292)가 분사대장도감에서 증보판을 간행하였는데, 1241년 금속활자본의 번각본임이 최근 새롭게 제기되었다.[1]『상정고금예문』은 새로운 활자를 주조하여 찍은 것이 아니며, 소위 『증도가』, 『상정예문』, 『동국이상국집』이 10여 년 이내에 같은 활자로 찍었고 활자 역시 개성에서 주조되어 강화도 천도 때 함께 가지고 가서 책의 출판에 사용하다가 1270년경 다시 환도할 때 돌아온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남권희 (2011) 참조. 『자비도량참법집해』 『자비도량참법집해(慈悲道場懺法集解)』는 고려 말기 승려 조구(祖丘, ?~1395)가 『자비도량참법』에 나오는 어려운 글자와 내용에 대한 상세한 설명과 함께 쉽게 풀이한 책으로, 『직지』와 동일한 금속활자로 인쇄한 판본임이 밝혀졌다. 금속활자로 인쇄한 이 책의 원본은 전하지 않고, 금속활자본을 그대로 목판에 새긴 번각본만 현존하고 있다. 『직지』의 금속활자 인쇄 사실을 뒷받침하는 자료로 의의가 크다. 『직지』 『직지』 하권에 사용된 금속활자의 종류는 반복 사용을 포함하여 총 5,500여 종 14,000여 자가 넘는다. 『직지』를 인쇄하는 데 사용된 금속활자는 크기에 따라 큰 자(중간 자)와 작은 자로 구분할 수 있다. 큰 자는 본문을, 작은 자는 주를 달기 위해 사용된 것인데, 작은 자가 본문에서 큰 자가 부족할 때 임시방편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직지』에는 서로 다른 활자들이 혼용되고 있다. 이는 주조 시기가 다른 데서 기인할 수 있으며, 『직지』를 인쇄한 것으로 알려진 흥덕사자(興德寺字)가 『직지』를 인쇄하기 위해 주조된 활자가 아닐 수도 있음을 뜻한다. 『직지』 이전에 『고금상정예문』, 『남명천화상송증도가』, 『자비도량참법집해』 등의 책이 활자로 인쇄되었다는 기록을 고려해 볼 때 13세기에 고려에서 이미 금속활자가 주조되었으며 훨씬 광범위하게 활자가 통용되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 집필자 : 서수정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전문연구원)
관련주석
  • 주석 1 『상정고금예문』은 새로운 활자를 주조하여 찍은 것이 아니며, 소위 『증도가』, 『상정예문』, 『동국이상국집』이 10여 년 이내에 같은 활자로 찍었고 활자 역시 개성에서 주조되어 강화도 천도 때 함께 가지고 가서 책의 출판에 사용하다가 1270년경 다시 환도할 때 돌아온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남권희 (2011) 참조.

관련자료

    이미지
    『남명천화상송증도가』의 진양공 최이의 후서(後序
    동국대학교 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 상세정보
    이미지
    『동국이상국집』후집 권11, 「신서상정예문발미(新序詳定禮文跋尾)」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상세정보
    더보기  +

지리정보

    • 내용
  • 위로
  • 불국토
    문화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