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직지』가 처음 전시되고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으로 『직지』가 소개되었던 모리스 쿠랑의 『한국서지』는 1901년 선교사였던 제임스 게일(James Scarth Gale, 1863~1937)이 서문 일부를 영역(英譯)하고 몇몇 일본 학자들이 문헌을 통한 소개를 한 것 외에는 알려지지 않았다. 한국어로 된 최초의 번역은 1946년 국어학자였던 김수경(金壽卿, 1918~2000)이 『한국서지』의 서문만을 번역하여 발행한 것이었다. 이후 『한국서지』와 『직지』에 대한 내용은 잊혀져 갔다.
시간이 흘러 1960년대 후반부터 한국에서는 프랑스에 있는 한국 자료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고조되기 시작하였다. 이를 계기로 모리스 쿠랑의 업적이 재조명되었고, 1970년 3월 27일 ‘우리 문화 발전에 가장 기초적이고 일차적인 사업을 이루었으며 국외에 한국의 참모습을 소개한 공헌’을 한 모리스 쿠랑에게 한국 정부는 문화훈장 모란장을 추서한다.
한편, 1972년 5월 17일 파리에 있는 프랑스 국립도서관(Bibliothèque nationale de France)에서는 ‘Le Livre(책)’라는 대규모의 전시회가 열린다.(그림 1) 유네스코가 1972년을 ‘국제 도서의 해(1972: International Book Year)’로 지정한 것을 기념하는 이 전시는 파피루스부터 다양한 서사 재료, 동서양의 필사본과 인쇄본을 총망라한 방대한 행사였다.
〈그림 1〉 1972년 Le Livre 전시 도록 표지 (프랑스 국립도서관 소장)
특히 전시 도록 서문 첫 장에는 극동의 인쇄술을 설명하며 ‘활자 인쇄에 있어 구텐베르크보다 수십 년 앞서 한국에서 놀라운 숙달을 보였다’는 내용이 수록되어 있고 극동의 인쇄 문화 항목에 『직지』가 소개된다. 42번째 ‘Jik ji sim kyông(직지심경)’이라는 제명(題名)으로 1책, 38장, 246 x 170mm의 형태 사항과 프랑스 국립도서관의 한국 장서 번호인 ‘coréen 109’를 포함하였고 ‘1377년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인쇄되었다’라는 설명을 썼다.(그림 2)
〈그림 2〉 1972년 Le Livre 전시 도록 중『직지』 소개면 (프랑스 국립도서관 소장)
1972년 5월말 국내 언론을 통하여 ‘「直指心經」 世界最初 金屬活字本’(그림 3), ‘高麗金属활자 「世界최초」公認’, ‘世界最古의 高麗金屬活字印刷物「直指心經」빠리서發見’ 등의 기사가 전해진다. ‘한국고서목록에도 게재되어 있지 않아 국내 학계에서는 전혀 몰랐던 새 진귀본’이며 그 출처에 대해서는 ‘구한말 우리나라 주재 공사의 개인 수집품이었거나 모리스 쿠랑이나 또는 그와 친분이 두터웠던 프랑스 외교관이 가져갔거나 아니면 병인양요 때 프랑스 동양함대가 약탈해 갔거나 한 것이 아닌가’라고 추측하는 보도가 있었으나 당시 프랑스 국립도서관의 동양필사본(Les manuscrits orientaux) 부서 책임자 세귀(Marie-Rose Séguy)는 인터뷰에서 이 자료가 콜랭 드 플랑시의 수집품으로 모리스 쿠랑의 『한국서지』에도 그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는 것을 밝혔다.
〈그림 3〉 1972년 『직지』 신문기사 (불교신문, 1972.05.29.)
『직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당시 문공부(文公部)에서는 강주진 국회도서관장을 1972년 8월 파리에 파견하였다. 강주진 관장은 전시를 보고 돌아온 후 ‘『직지』는 금속활자본이 아니다’라는 주장을 하였다. 1972년 12월에 박병선(朴炳善, 1923~2011) 박사가 복제본을 가지고 한국에 왔다.(그림 4) 박병선 박사는 1950년 서울대학교 사회생활과를 졸업하였고 1971년 파리7대학에서 역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67년부터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임시직으로 근무하면서 『직지』의 소장 상황을 한국에 전했다. 이후 독립연구자로서 병인양요 때 프랑스함대가 약탈해 간 외규장각의 의궤에 대한 연구에 평생을 헌신하였고, 그 공로로 2011년 국민훈장 모란장이 추서되었다.
〈그림 4〉 1972년 12월, 박병선 박사 (필자 제공)
한편, 박병선 박사가 가져온 복제본에 대한 1차 조사는 강주진 국회도서관장, 안춘근 을유문화사 기획부장, 이겸로 통문관 사장 등이 참여하였는데, 각각 금속활자, 목활자, 목판 등으로 서로 다른 의견을 제시하였다. 이에 1972년 12월 28일 국회도서관 2차 조사를 실시하였다. 김두종 서울대 명예교수, 이병도 학술원 원장, 김상기 서울대 명예교수, 백린 서울대도서관 열람과장, 손보기 연세대 교수, 천혜봉 성균관대 교수가 참여하였다. 이 2차 조사를 통해 목활자가 혼입(混入)되어 있으나 『직지』는 동으로 제작한 금속활자라는 결론을 최종적으로 내리게 되었다.
1973년 문화재관리국은 『직지』의 영인본 출판을 계획하고 1974년 천혜봉 교수의 해제와 함께 영인본 500부를 간행하여 국내외에 보급하였다.
· 집필자 : 이혜은 (숙명여자대학교 문헌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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