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장서를 소장하고 있는 유럽과 북미의 도서관 참고정보실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한국 관련 자료는 단연 모리스 쿠랑(Maurice Courant, 1865~1935)(그림 1)의 『한국서지(Bibliographie Coréenne)』이다. 『한국서지』는 모리스 쿠랑이 주한 프랑스 공사관 서기로 와 있었던 1890년 5월부터 1892년 3월까지 1년 10개월 동안 수집, 조사한 자료와 빅토르 콜랭 드 플랑시(Victor Collin de Plancy, 1853~1922), 귀스타브 뮈텔(Gustave Mutel, 1854~1933) 주교 등의 개인 장서와 영국 국립박물관, 일본 우에노도서관, 규장각 등에 소장된 한국 고서에 대하여 기록한 서지로 모두 3,821종의 도서를 9부(部) 36류(類)로 나누어 수록하였다.
〈그림 1〉 모리스 쿠랑 (Médiathèque du Grand Troyes 소장, 필자 제공)
모리스 쿠랑은 서울에 부임한 후 당시 주한 프랑스 공사였던 빅토르 콜랭 드 플랑시로부터 조선 책들에 대한 목록을 작성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이 작업은 쿠랑이 한국 근무를 마치고 떠난 이후에도 한국에 체류하던 뮈텔 주교 등으로부터 도움을 받으며 지속되었다. 모리스 쿠랑은 “서울의 책방을 모두 뒤지고 그 장서를 살펴나갔다. 가장 흥미 있을 것 같은 책들을 사들이고 나머지에 대해서는 상세한 설명을 써 놓았다.”라고 『한국서지』의 서문에 기록하고 있다.
1894년 『한국서지』 1권이 간행된 후 1901년 보유(補遺)판까지 모두 4권으로 완성하였다. 170여 쪽에 달하는 『한국서지』의 서문은 다수 번역되어 소개되었고 구한말 서구에 한국의 문화를 알리는데 기여하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한국서지』 보유판 3738번에는 『직지』가 소개되어 있는데, 『직지』는 1책이며 제2권(하권), 대8절판의 크기임을 나타내고 C.P.라고 표시하여 콜랭 드 플랑시의 소장본임을 밝힌 후 다음과 같은 해제를 수록하고 있다.(그림 2)
이 책 마지막에는 다음과 같은 설명을 적고 있다.
1377년 청주목 외(淸州牧外) 흥덕사(興德寺)에서 주조된 활자로 인쇄됨. 이 내용이 정확하다면, 주자(鑄字), 즉 활자는 활자의 발명을 공적으로 삼는 태종(太宗)의 명(命)(n°1673)보다 26년가량 앞서 사용된 것이다. 그 외에도 선광 7년(宣光七年)이라고 쓴 연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선광(宣光)이라는 통치연대의 명칭은 1371년 원조(元祖)의 왕위계승을 요구하는 소종(昭宗)에 의해 채택된 것이다.
〈그림 2〉 『한국서지(Bibliographie Coréenne)』의 『직지』 수록 부분 (프랑스 국립도서관 소장)
모리스 쿠랑은 조선의 금속활자 인쇄술이 독일의 구텐베르크는 물론 중국보다 앞선다는 사실을 명확히 알고 있었다. 쿠랑은 『한국서지』 1권에 수록된 서문에 “인쇄 기술에 있어서 한국은 중국을 능가하고 유럽보다 앞선다.”라고 썼다.
모리스 쿠랑은 1865년 10월 12일 파리에서 태어나 1883년 파리대학 법대에 입학하여 1886년에 학사학위를 취득하였다. 1885년에는 동양어학교(L’Ecole des Langues Orientales Vivantes)에 등록하여 중국어와 일본어를 공부했으며 1888년에는 고등교육학위(Diplôme)를 받았다. 1888년 9월부터 1890년 5월까지 중국 북경의 프랑스 공사관 통역관 실습생 자격으로 근무한 후 1890년 5월 통역서기관으로 서울로 전속되었고 1892년 3월 한국 근무를 마치고 북경으로 떠났다.
쿠랑은 서울에서의 근무를 원했으나 이루어지지 않았고 1895년 텐진(天津) 영사관에서의 근무를 끝으로 통역관으로서의 경력을 그만두었다. 그는 파리로 돌아가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동양학 자료의 목록 작업과 강의와 연구를 지속하였다. 이후 1913년 리옹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이어 리옹 대학의 교수로 임명되었다. 1919년 쿠랑은 일본과의 교육 협력 사업을 위한 학교 사절단의 일원으로 일본에 6주간 체류하였는데, 이때 한국에 와 평양, 서울, 대구에 잠시 머무르며 장서각(藏書閣)을 방문하기도 하였다. 쿠랑은 1934년 병으로 중단할 때까지 리옹 대학에서 중국어와 함께 한국 문화를 강의하였고 1935년 8월 18일 세상을 떠났다.
쿠랑은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한국의 문화를 소개하는 『샹 드 마르스의 한국관, 서울의 추억(Le pavillon coréen au Champ-de-Mars, Souvenir de Seoul, Corée)』을 비롯하여 한국의 유적, 한국의 음악, 문자 등 다양한 주제의 저술을 남겼다. 쿠랑은 프랑스 최초의 한국학자로 평가받고 있으며, 한국의 문화를 알리는 데 공헌한 것으로 1970년 3월 27일 문화훈장 모란장이 추서되었다.
· 집필자 : 이혜은 (숙명여자대학교 문헌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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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랭 드 플랑시 컬렉션 기초조사: 프랑스 트루아시립메디아테크 자료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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