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년 4월 프랑스 파리에서는 만국박람회가 개최되었다. 파리의 마르스 광장(샹-드-마르스, Champ-de-Mars)의 쉬프랑(Suffren)길에 한옥 형식의 2층 건물로 지어졌던 대한제국관에는 대한제국 정부가 보낸 가구, 농기구, 농산물, 악기, 보석, 복식, 사냥도구, 무기 등이 전시되었고 당시 주한 프랑스 공사였던 빅토르 콜랭 드 플랑시(Victor Collin de Plancy, 1853~1922)(그림 1) 소유의 도자기, 책, 동전들도 전시되었다.
〈그림 1〉 빅토르 콜랭 드 플랑시 (Médiathèque du Grand Troyes 소장, 필자 제공)
특히 콜랭 드 플랑시 공사는 대한제국을 국제사회에 알리는 기회라는 점을 들어 고종(高宗, 1852~1919)에게 박람회 참여를 적극적으로 요청하였다. 당시 발간된 『고고학, 역사 및 예술 협회 회보(Bulletin de la Société archéologique, historique & artistique le Vieux papier)』에는 대한제국관에 전시된 『직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구텐베르크가 유럽에서 인쇄를 발명하기 거의 두 세기 전에 한국인들은 이미 활자를 가지고 인쇄를 하였다. 방문자의 눈으로 살펴보았을 때 전시품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콜랭 드 플랑시씨의 소장품이다. 이 책의 제목은 불교 교리집이며 8절판, 승려 백운에 의하여 저술된 이 책의 마지막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 1377년, 선광(宣光) 7년 청주의 외곽, 흥덕사에서 간행
금속활자 인쇄가 독일 구텐베르크보다 한국에서 먼저 시작되었고, 특히 콜랭 드 플랑시의 소유인 『직지』의 마지막 페이지에는 1377년 청주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인쇄된 것이라는 내용이 있고 만국박람회에서 가장 오래된 전시품이라고 설명하고 있어, 『직지』의 가치는 이미 1900년 전시를 통하여 알려지게 되었다.
『직지』의 소장자였던 빅토르 콜랭 드 플랑시는 프랑스의 외교관이며 애서가, 미술품 수집가였다. 콜랭 드 플랑시는 1887년 초대 주한 프랑스 대리공사로 한국에 부임하여 1891년까지 근무하였다. 이후 1896년에서 1906년까지 주한 프랑스 공사 겸 총영사로 있으며 도자기, 가구, 고지도, 고서, 회화 등 다양한 한국 문화재를 수집하였다. 특히 『직지』를 수집한 후 그 가치를 파악하여 직지의 표지와 속지에 “주조된 글자로 인쇄된 책으로 알려진 것 중 가장 오래된 책. 연대=1377년(Le plus ancien livre coréen imprimé connu en caractères fondus, avec date=1377)”(그림 2), “불교 교리 내용. 1377년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인쇄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국 인쇄본(Traits edifiant des Patriarches En 1377, a la bonzerie de Heung Tuk imprime a l’aide de caracteres fondus. Le plus ancien livre coréen imprime connu.)”이라는 기록을 직접 남겼다. 그리고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의 대한제국관을 통해 처음으로 이를 공개했다.
〈그림 2〉 『직지』 표지의 기록 (프랑스 국립도서관 소장본)
빅토르 콜랭 드 플랑시는 1853년 11월 22일 파리에서 동쪽으로 100여 km 떨어진 플랑시(Plancy, 현재 이름은 Plancy L'Abbaye)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출판업을 했던 자크 콜랭 드 플랑시(Jacques Collin de Plancy, 1794~1881)로 원래 ‘콜랭 당통(Collin Danton)’이라는 성을 사용했었다. 그런데 플랑시(Plancy) 마을에 정착하며 ‘콜랭 드 플랑시’라는 성을 사용하기 시작하는데 이로 인하여 조르쥬 드 프랑시(Georges de Plancy) 백작의 이름을 사칭한 것으로 유죄 판결을 받기도 하였다.
1854년 콜랭 드 플랑시 가족은 파리로 이사를 하였고, 1877년 빅토르 콜랭 드 플랑시는 프랑스 동양어학교(L’Ecole des Langues Orientales Vivantes)에서 중국어와 법학 학위를 취득하였다. 졸업 후 중국 베이징 소재 주중 프랑스 공사관의 통역연수생으로 외교관의 경력을 시작하였다. 1887년 5월 프랑스와 조선과의 우호조약에 대한 비준 서류를 교환하는 업무를 맡게 되어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하였다. 1887년 11월에는 최초의 주한 프랑스 영사로 임명되어 한국에 체류하게 된다. 1890년 잠시 동안 베이징의 수석 비서관으로 근무하기도 하였고, 1891년에는 일본 도쿄의 영사로 임명되어 한국을 떠나게 되었다.
그 후 워싱턴, 아테네, 파리 그리고 모로코 탕헤르(Tanger)의 영사를 역임하고 1896년 주한 프랑스 공사 겸 총영사로 다시 서울에 왔다. 그러나 1905년 11월 일본은 ‘을사늑약’을 체결하며 조선 정부의 외교권을 박탈하였고 12월 21일 통감부(統監府) 및 이사청(理事廳) 관제(官制)를 공포하고 1906년 1월에는 주한 일본 공사관을 비롯한 각국의 영사관을 철수시킨다. 이때 주한 프랑스 공사관도 철수하면서 빅토르 콜랭 드 플랑시도 서울을 떠나게 되었고 1907년 은퇴한 후 1922년 파리에서 사망하였다. 빅토르 콜랭 드 플랑시는 주한 프랑스 영사로 근무하면서 조선 왕실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고 한불 관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 집필자 : 이혜은 (숙명여자대학교 문헌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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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ux Papiers de Corée, Bulletin de la Société archéologique학술논문 Vivarez, Henri | historique & artistique le Vieux papier | Paris : [Le Vieux papier] | 1900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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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랭 드 플랑시 컬렉션 기초조사: 프랑스 트루아시립메디아테크 자료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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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ste D'objets Exposes Lors de L'exposition Universelle de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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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ste D'objets Exposes Lors de L'exposition Universelle de 1900 A Paris, Archives Nationales F-12-4224~4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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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lection d'un amateur : Objets d'art de la corée, de la Chine et du Japon, 27-30 mars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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